한국일보

사랑과 인내의 예술품, ‘조각보

2006-01-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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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옥(MOMA 근무)

매년 그래왔듯이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우리는 20여명의 친구들을 초청했다. 그리고는 , 항상 그렇듯 난 며칠 동안 음식, 장식, 가구 배치 등으로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며 한밤중에 일어나고는 했는데 어느날 밤 기막힌 아이디어 하나가 반짝 떠올랐다.그래, 금년 크리스마스의 주제는 한국적으로 한다! 음식도 대부분 한국 것으로 하고, 장식도 한국 것을 가미해 더 돋보이게 만들고... 조각보를 이용하자!

역시 한밤중에 나는 장롱을 뒤지며 내게 있는 조각보들을 다 꺼내놓고 어디에, 어떤 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열심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맨하탄의 작은 아파트에서 절대로 쉬운 과제가 아니다.나에게 있는 조각보들은 화려하지도 않고, 별로 크지도 않으며, 천의 질도 다양하지만 나는 그
하나 하나를 만질 때마다 가슴 뭉클한 연민을 느끼고는 한다.
90이 넘으실 때까지 짜투리 하나 안 버리시고 그림을 그려 나가시듯 한 바늘, 한 바늘, 화폭을 마무리하시던 시할머님, 외숙모님, 큰어머니, 그리고 엄마- 지금은 다 이 세상에 안 계신 분들이다.옛날 조각보에 쓰이는 헝겊의 대부분은 저고리 소매를 자를 때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소매
모양이 둥그렇게 내려오다가 좁아지기 때문에 헝겊이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인 듯 싶다.


수북히 쌓여진 가지 각색의 헝겊을 이리저리 맞춰가며 한 치 틀림없이 가위로 잘라 밤 늦도록 바늘을 놀리시던 그 분들의 인내심 뒤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바늘 한 뜸마다 말 못할 사연들을 총총 꿰어 속 깊이 간직하려 했던 한스러운 연민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전통을 중요시 하면서도 무슨 사연이 담긴 듯한 어떤 조각보는 마치 Paul Klee의 추상화를 보는 것 같은 창작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인들은 시간과 공간을 상징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무슨 말씀들을 하고 싶으셨을까?
저녁 먹기가 무섭게 나는 이 조각보를 펼쳤다가, 또 다른 것을 펼쳐놓고... 매일 수선을 부렸다. 그 통에 아예 남편은 혼동스러워 손을 들어 버렸고, 크리스마스 이브 이틀 전, 냄새가 싱그러운 트리를 사다가 우선 장식을 해놓기로 했다. 난 너무 색이 강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해서 금년 역시 모든 장식을 같은 계통 색으로 통일시켰다.그리고 나니까 일이 쉬워졌다.우선 조각보 세 개를 골랐다. 하나는 시할머님이 주신 것이고 두 개는 엄마가 반신마비에서 조금 회복되셨을 때 여러 개 만들어 우리들에게 다 나눠주셨던 원색의 조각보였다. 셋 다 색이 강하고 간단하지 않은 디자인이었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 크리스마스 트리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시할머님 것은 응접실의 한국 반다지 위에 펼쳐놓고 그 위에 장미 만발한 꽃병을 얹어 놓았다. 엄마 것 중 조금 큰 것은 복도에서도 보이는 우리방 벽에 그림 대신 걸어놓았고 조그만 정사각형 조각보는 들어오는 문 옆 벽에 역시 그림처럼 걸어놓았다.어쩜 이렇게 아름다울까? 어쩜 이렇게 나를 푸근하게 감싸줄까? 우리 딸이 “엄마, 멋있다” 했을 때 난 그 애를 통해 몇 세대의 따뜻한 체온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다.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우리 조상 여인들 조각보에는 자손들에게 주는 교훈도 있다. 하찮은 것에 아름다움이 있으며, 아름다움의 조화는 인내에서 오는 것이며 인내에서 창조된 조화는 진실이라는 것.내게 주신 이 완벽한 사랑의 예술품을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찬찬히 어루만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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