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또 한 해가 저무는데

2005-12-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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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기(롱아일랜드)

마지막 잎새, 마지막 수업, 마지막 만찬, 마지막 만남, 슬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 이렇듯 마지막이란 말은 어쩐지 아쉬움, 안타까움, 슬픔같은 걸 뒤섞어 놓은 감정의 칵테일 같은 것처럼 한 해를 보내는 마음도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착잡함은 나만이 느끼고 있는 것일까.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 스님의 말처럼 세월은 그대로 있는데 우리가 그 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나도 세월도 함께 잘도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축제 기분에 젖어 즐기고 흥겨워하는 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은 이 때처럼 더 외롭고 더 시립고 더 아려올 때가 없을 것이다. 내 배가 부를 때, 남의 배고픔을 이해한다는 것, 내 등 따뜻할 때 남의 등 시리운 것, 내가 건강할 때 남의 고통을 같이 한다는 것, 그리 쉬운 일이 아
니다.한국의 어느 교회 목사가 어려운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정기적으로 목욕을 시켜주고 있다는 기사는 작은 소자 하나에게 베푸는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감동의 얘기였었다.또 27세, 28세 꽃다운 나이에 오스트리아로부터 소록도에 와서 43년 동안 한결같이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환자들이 장갑을 끼고 치료해 주기를 간청하는데도 맨손으로 고름 흐르는 환자를
치료해 오다 이젠 나이들어 혹 짐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간 두 천사들의 사랑은 너무나 아름다
워 눈시울을 적시게 해주었다.
그들이 남긴 글에는 “부족한 외국인으로 모든 분들께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의 부
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알리지 않고 떠
나는 것은 이별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행함 없는 믿음, 실천 없는 사랑, 빈수레나 울리는 징과 다를 바 없다.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않은 것, 한 해가 저물어가는 길목에서 나를 때리며 찔려온다. 우리 모두 모태에서 적신으
로 와서 또 그렇게 적신으로 갈 것인데 우리에게 있는 것 어느 하나도 나의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인양 착각하며 살아온 나의 잘못이 이를 아프게 한다.
가난할 때 이웃을 돌보지 못하면 돈이 많아도 돌보지 않는다. 어려울 때 헌금 못하면 부자가
되어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도 있다.
요즘 이민자들은 다르지만 오래 전엔 달랑 몇백달러 들고와서 공부하고 차 사고, 집 사고, 아이
들 교육시키고, 의식주 불편없이 사는 것, 참으로 감사할 일인데 우리는 감사를 잊고 더 많은
것, 더 큰 것, 더 좋은 것을 향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토스토예프스키는 사람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는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감사하지 못하고 이웃의 아픔을 나누지 못하는 것은 고인 물과 같아서 곧 썩어 냄새 나고 고기도, 식물도 자랄 수 없는 사해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이끼가 끼지 않게 하려면 우리의 축복을 먼저 깨닫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인간의 부요함이 소유의 다과에 있지 아니하고 손을 퍼 베푸는 나눔의 풍성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구세군 자선 종소리가 울리는데 우리는 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나 하나쯤 그런 생각 버리고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도우면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타고르’ 기도가 힘이 되었으면 한다. “고통 속에서도 이길 수 있는 인내를 주시고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며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기쁘고 성공할 때만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생각하게 마옵시고 하루 하루 슬픔과 괴로움, 때로는 핍박과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내 손을 꽉 잡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한 해를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 실려보내고 밝고 기쁘고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모두에게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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