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정 능력

2005-12-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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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개인의 능력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런가 하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능력 또한 다채롭다. 이 중에 자정 능력이 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자정 능력은 생물에서 생체를 이루고 그 기관을 조직하는 물질이 오염된 대기나 하천의 침전·산화 작용 또는 분해 등으로 저절로 깨끗해지는 작용을 일컬음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요즈음 한국내에서 일고 있는 황우석 교수 쇼크는 그 진행 상황을 볼 때 점차 어두운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의 연구 결과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마음에 쌓이는 허탈감과 참담함을 형용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 모든 현상을 황 교수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직하고 착실하게 연구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과학도를 사회가 비뚤게 만든 면도 없지 않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 밀려 연구 과정을 소홀히 하고 조속히 업적을 내려고 서둘지는 않았을까. 방법 여하를 가리지 않고.


하여튼 그를 둘러싼 사회는 쉽게 영웅을 만들었다. 과학도와 연예인을 구별하지 않았다. 반짝 일순간을 즐기게 하는 재주와 잠자코 꾸준히 오랜 기간 연구를 계속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귀한 성과의 가치를 혼동하였다. 그를 조용히 연구실에 머물게 하는 참된 애정이 행방을 잃었다. 사
회의 그릇된 지나친 사랑 때문에 그도 가야할 길을 잃었다. 그러나 사회는 또 다른 방향의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번 일을 ‘국치’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잔치를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라의 부끄러움으로 생각하는 쪽은 국제적인 신뢰를 잃었음을 가리킨다. 아니다, 전화위복으로 돌리자는 쪽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음이 확인된 자정 능력을 말한다. 황 교수 논문에 의문을 가지고 고발한 것은 국제적인 연구기관이 아니라 한국내의 젊은 과학도들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행한 일이다.

이 자정 능력은 사회 발달의 중요한 요소이다. 혈액 중의 백혈구처럼 사회에 부정 세력이 커갈 때 용감하게 이를 공격하여 전진 궤도를 수정하는 힘이다. 말하자면 사회에 있는 보이지 않는 정의군대인 격이다. 어지러운 황 교수 쇼크의 최전선에 이 자정 능력이 진을 치고 있다.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 그들은 ‘나라 사랑’ ‘과학 사랑’ ‘황 교수 사랑’에서 출발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MBC PD수첩이 도화선이 되었는데, 그들의 목적이 ‘사실 고발’에서 멈춘다면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젊은 과학자들과 열쇠를 쥐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
여서 황 교수 자신이 잘못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논문을 철회할 수는 없었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까닭은 결과가 너무 비참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의 일차 발표는 ‘황 교수의 논문이 조작되었다’이다. 그래도 결과를 의심받게 된 이유가 어떤 실수가 거듭되었기 때문인 것이며, 근본적인 기술은 보유하고 있음이 증명되기를 기다리던 어리석음. 도대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교수직을 사임하겠다는 황 교수의 발언,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말... 모든 것은 너무 큰 충격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미래 지향적인 생각으로 대처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라 안팎에서 그
의 연구에 주목하고 성원을 보낸 까닭이 그의 연구가 난치병 치료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우리는 그들을 생각하고 다시 용기를 내야 한다. 누군가의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엄청난 충격을 새로운 출발로 돌리자. ‘그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결론은 뒤를 남기지 않아서 간단하다. 사회의 자정 능력은 황 교수의 자정 능력을 일깨웠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력도 맑아졌다.

2005년을 청산하면서 이를 잊자. 우리에겐 젊은 과학도들이 있다. 그들의 탐구력과 용기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 사회는 자정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발전 발달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그 사회의 일원이다. 아듀,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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