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절망에서 희망을 넘어 믿음으로

2005-1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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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석(뉴욕그리스도의교회 목사)

살다 보면 삶에 희망과 의욕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주위로부터 따뜻한 시선 조차 받지 못할 때 이렇게 살아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슨 큰 욕심이라도 냈으면 모를까, 그저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그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그 작은 소망마저 무참히 꺾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올 한 해도 여지없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절망의 요인들... 쓰나미, 카타리나, 재벌의 딸 자살사건, 뉴욕의 대중교통 파업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자연재해와 인위적인 사고들이 쉬지 않고 몰려왔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충족된 세상에서는 희망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 바랄 게 없는데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희망의 가치는 욕구와 바람이 이뤄지지 않는 곳에서 비로소 인식된다. 희망은 언제나 절망의 땅에 거주하면서 지킴이 역할을 한다. 늘 절망이 찾아올
때 굿굿이 서서 지킴을 한다. 물론 절망이 싫어하는 온갖 용기와 꿈, 끝없는 도전, 이타심, 배려, 평화를 노래하면서... 그럴 때마다 절망은 잔인하고 무자비한 자기 부정의 폭력으로 삶 속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절망에 부닥치면 첫째로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보다 건강하지 못해서, 남들보다 배우지 못해서, 남들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해서, 남들보다 외모가 못나서 등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여러가지 이유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이겨내려는 용기와 도전의식이 결여돼 있음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나보다 더 못 배우고, 나보다 더 건강하지 못하고, 나보다 더 빈곤하고, 나보다 더 못생긴 사람이 성공하는 모습을 얼마든지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현실을 딛고 이겨냄으로써 자신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들 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벅찬 희열과 성취감을 얻게 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이겨내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둘째는 가장 치명적인 상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삶의 목적, 곧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고뇌가 클수록 시름이 깊어지던가. 막막한 인생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목적은 커녕 방향 조차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그 때 절망이 찾아온다.절망의 모습은 자포자기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며 가치가 있는지 부정한다. 자신의 출생을 비관하며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자신의 꿈을 휴지통에 집어넣는다. 절망의 덫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절망이라는 무서운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절망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희망에 있다. 희망의 빛 한 줌만 있어도 바위덩어리처럼 무거운 절망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다.

성경의 사건은 수많은 절망 가운데 희망을 넣어 소망을 갖고, 더 나아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간증이다. 요셉이 우물에 빠지고 옥에 갇혔어도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고, 그 친구들이 풀무물 속에 들어가고, 롯이 남편이 죽고 흉년이 들었어도, 욥이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이다. 수많은 절망이 있는 곳에 햇빛과 같은 소망이 있고 그 소망은 인내를 요구하고 믿음으로 응답되어질 때 오히려 빛나게 되는 것이다.올해를 힘들게 보내었다면 내년에는 더 좋은 소망을 갖자. 그리고 믿음으로 굳게 세워 자손만대에 복됨을 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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