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주인공 실종 시대...

2005-1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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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2부 차장대우)

“주인공을 찾습니다!” 영화나 뮤지컬의 주연배우를 모집하는 오디션 광고문구가 아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요즘 미국에서는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할러데이즈‘를 놓고 또다시 논란이 들끓고 있다. 더 많은 고객층 확보를 노린 계산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대형 소매업체들마다 ‘크리스마스’ 대신 ‘할러데이즈’ 문구사용 결정을 연이어 발표하는가 하면, 어떤 시 정부는 공원의 ‘크리스마스트리’를 ‘할러데이 트리’로 부르기로 결정했고, 연방의회 의사당 앞 크리스마스트리 명칭 때문에 논란은 정치권에까지 번지고 있을 정도다.

아무리 특정 종교에 대한 표현 지향과 타종교·무신론자 포용 차원이라지만 성탄절의 의미가 지나치게 퇴색된 느낌이다. 특히 성탄절 일몰부터 유대인의 명절 하누카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볼 때 미국사회에 미치는 유대인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성탄절은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건만 성스러운 탄생의 주인
공은 온데간데없고 손님들끼리 축하선물 주고받으며 좋아라하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게다가 올해는 엄청난 유가상승, 이자율과 물가인상 등으로 주머니 사정은 더욱 빠듯함에도 샤핑몰로 몰려가 거침없이 지갑을 열어대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성탄절보다는 거부할 수 없는 할인상품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샤핑 중독자들 같아 보인다.


아무리 크리스마스의 상업화에 반기를 들고 ‘선물 안주기’ 캠페인을 전개해도 연말경기의 성패가 지역과 국가경제의 성패로 이어지는 마당에 숨도 크게 못 쉬는 분위기다. 다행히 CNN 방송과 USA 투데이가 실시한 공동 설문조사 결과, 미국인의 69%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선호하고 있고 ‘해피 할러데이즈’는 지난해 41%에서 29%로 떨어졌다는 보도는 그나마 위안을 준다.

한 해를 보내면서 그간 신세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관계가 소원해진 사람들과는 묵은 감정도 털어내며 마음의 선물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주인공이 사라진 성탄절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번 뉴욕시 대중교통공사(MTA) 노조 파업으로 출퇴근길 큰 불편을 겪었던 시민들이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됐던 것처럼 거리에서 지나치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를 생각하며 물질로 받는 선물보다 마음으로 베풀며 일년을 정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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