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아듀 2005

2005-12-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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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취재1부 차장)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올해 한국의 미니 시리즈 히트작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삼순이가 한 말이다. 지나가는 2005년은 삼순이의 심정을 반영이라도 한 듯 ‘강심장’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쉴 새 없이 많은 대형 참사들이 잇따라 발생한 한해였다.

지금까지 영화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쓰나미’가 2004년을 휩쓸고 가더니 올해에는 지진으로 파키스탄이 초토화됐고 ‘카트리나’라는 이름을 가진 허리케인으로 뉴올리언스라는 대도시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 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만 지구가 아프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지구도 아팠지만 새들도 아팠다. 다음엔 사람 차례인가? 김치가 항암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불과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김치를 먹으면 기생충이 생긴단다. 지난 해에는 몰랐지만 올해 새로 배운 단어는 신종 유행어가 아닌 ‘콘클라베’라는 고대의 단어였다.한국의 홍보기획사의 직원이 누출시킨 X-파일로 한국의 ‘연예인’들은 ‘연애인’들로 판명
났으며 한 재미동포가 누출한 X-파일로 주미 한국대사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대사는 비록 예상보다 훨씬 더 늦게 귀국했지만 세상은 넓다고 외치며 세계 곳곳에 숨어 다니다가 조국으로 돌아온 김우중씨 보다는 낫다고 본다.

세계의 천국 미국에서 태어나 이라크라는 지옥에서 목숨을 잃은 미군들의 수가 2,000명을 넘어섰다. 만약 인구증가 절제위원회라는 단체가 있다면 ‘올해의 인물상’은 단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천재지변이 만연하고 사람이 무더기로 죽고 있는 판국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신나 우쭐되는 두 가지가 있다. 개솔린과 주택 값이다.

정광태는 ‘독도는 우리땅’으로 일약 국민가수가 됐지만 수십여년간의 노력으로 국민가수가 된 조영남은 신사참배 망언으로 하루아침에 역적으로 주저앉았다. 2005년은 ‘한일 공동방문의 해’였지만 두 나라를 오가는 사람들은 ‘욘사마’를 외치는 일본 아줌마들뿐이었다.

올해에도 테러리스트들은 쉬지 않고 발리와 런던 등을 방문하며 고약한 짓을 저질렀다. 한국에서는 ‘하늘을 날으는 택시의 운전기사’들이 1억원의 연봉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파업을 하더니 그 병이 뉴욕 버스와 전철 기사들에게까지 도졌다. 학창시절 때 공부에 매진하자는 취지로 ‘방바닥에 등 안대기 클럽’을 결성했다는 황우석 박사가 방바닥에 눕지 않고 앉아서 열심히 봤다는 책이 설마 ‘사진조작 어떻게 하나’는 아니었
길 간절히 바란다. 스위스, 토고, 프랑스...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다가오는 병술년은 개의 해이다. 웬만하면 귀엽고 사랑스런 강아지와 같은 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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