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희망을 기다리며

2005-12-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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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주 영 <논설위원>

12월은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달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성탄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날을 앞두고 기독교에서는 보통 12월 첫 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4주간을 대강절(Advent Sesson), 즉 왕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로 기린다. 이 기간을 통해
한인들이 모두 기다림의 미학을 배우면 좋을 것 같다.

우리 이민사회는 일반적으로 어느 커뮤니티보다 빠른 기간 내에 발전했고 또 자녀들도 모두 잘 성장했으며 가정마다 그런 대로 먹고 살만큼 쌓아놓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대로 잃어버린 것도 많은 게 사실이다. 어떻게든 빨리 일어서려다 보니 우리 사회는 부부간에 알게 모
르게 갈등의 골이 깊게 파이면서 가정들이 많이 깨져 있고 육체적으로도 많이 병들어 있다. 또한 이중문화권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대두되면서 아이들이 범죄에 연루되거나 타락하지 않으면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요즘 같은 경우는 지속적인 경기불황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허우적거리는 한인들도 상당수가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절망하고 슬퍼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그러나 이번 대강절 기간에 우리가 이렇게 낙심하고 좌절하며 또 비통해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이 희망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올 것을 기다렸듯이 우리도 비록 어렵고 힘들고 지치는 생활이지만 새로운 삶의 희망과 꿈을 갖고 다가오는 새 해의 축복을 기다리는 자세로 이 연말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설사 지금은 비즈니스가 어렵더라도, 부부간에 안 맞는 일이 좀 있다손 치더라도, 또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더라도 ‘언젠가는 다 풀리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림의 자세로 인내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자세일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우리의 삶은 너무도 빨리 달려오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버거웠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는 ‘빨리, 빨리’라는 병에 걸려 살아왔다. 히스패닉들이 다른 건 몰라도 우리말에 ‘빨리’라는 단어는 알만큼 우리는 뭐든지 ‘빨리’를 좋아해 속히 되길 원했고, 빠른
성장을 바랐으며, 아이들도 어서 빨리 성공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다 보니 모든 면에서 성공한 한인들도 많지만 상당수가 자신도 모르게 지치고, 깨지고, 상처 나고 또 넘어지는 아픔을 겪고 있다.

미국에 우리가 처음 이민와서 배운 것은 무엇보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우체국, 또는 수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가서도 이민국, 혹은 공원, 심지어 고장난 지하철 속에서도 우리는 기다림의 철학을 공부했다. 이 미학은 지금 우리 한인사회와 가정에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다는 생각
이다. 괴테는 기다림과 관련, “서두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단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천천히 생활하되, 쉬지 말고 조급하지 않으며 희망을 가지고 끈임 없이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게 되면 언젠가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소생한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크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제하의 저술을 통해 “사람은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라고 했다.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함이다. 기다림은 희망과 자기현실을 이어주는 하나의 연결고리다. 현실은 어렵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기다림이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무기력하고 포기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안 보인다. 죽음을 앞둔 수용소에서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린 사람은 살아남았다. 기다림은 삶을 지탱하는 요소요, 생명력을 키워주는 힘이자, 기둥이다.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능성을 품은 사람이다.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삶이 뿌리내리고 생명을 유지하고 성공적인 삶을 결정짓는 하나의 결정체나 마찬가지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조급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괴테의 말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불평하지 않고 성실하게 끈기를 가지고 전념하게 되면 희망은 자연
히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한인들은 모두 이 절기에 다시 한번 기다림의 뜻을 음미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리고 열심히, 앞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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