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의미있는 ‘송년전략’

2005-12-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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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평통 교육홍보위원장)

뉴욕 평통에서는 연말을 맞으며 어떻게 하면 한인사회와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래서 모아진 의견이 뜻있는 강연회를 가져 보자는 것과 불우이웃을 돕는 단체를 방문하며 봉사를 하자는 것. 뜻있는 강연회로 개최된 것이 지난 2일 열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초청 강연회’다.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전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강연회는 주최측인 뉴욕평통 조차도 예상치 못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기대 이상이라고 자평한데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우선 뉴욕한인사회의 뜨거운 통일운동 열기를 확인케 했다는 점을 꼽고 싶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통일강연회에 100명 모으기도 힘들다는 점을 감안, 최대 120명을 목표로 행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당일 강연회를 찾은 이는 2백명에 달했
다. 이같은 동포사회의 호응은 물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라는 ‘유명세’ 덕이 크겠지만 현직도 아닌 전직 장관의 통일관련 강연회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동포사회의 높은 통일관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고 판단한다.


다른 성공적 요소는 다름아닌 강연내용. 실무와 이론을 겸비했다는 정세현 전 장관답게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 및 북·미, 동북아문제를 심층적이면서도 총체적 관점으로 논리정연하게 설명해 참석한 이들의 식견을 넓히는데 도움을 줬다.청중 중에는 좌우파 인사들이 세를 과시하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강연자는 좌우파에 상관없이 남북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일례로 주한미군 철수론
을 주장한 한 질문자에게는 독일 통일과정에 있어서 독일주둔 미군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미국을 협조자로 이끌어 낸 콜 총리의 지혜를 설명하며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통일의 협조자로 만들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주한미군 철수라는 ‘주권적
당위’ 보다는 통일환경조성을 위한 ‘전략적 지혜’의 필요성을 강조해 모든 이로부터 큰 공감을 받아냈다.

최근 남북문제에 있어서 가장 민감한 사안중에 하나인 북한 인권문제도 서슴없이 언급했다. 정 전 장관은 한국정부가 북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대화의 단절은 물론, 당장 한반도가 얼어붙을 것이 자명하다고 강조하며 북한이 아직은 국제사회의 압력, 또는 여론을 두려워하는 단계가 아
니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북인권개선을 전제로 대화하자는 것은 파국으로 가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진짜 ‘기대 이상’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 뉴욕한인사회의 성숙한 통일운동문화를 대내외에 과시했다는 점. 당일 강연회에 참석한 대부분은 한인사회에서 나름대로 중추적 역할을 하며 통일문제에 관한한 오피니언 리더역을 하는 이들이다.
개중에는 극단적 좌파도 있었고 또 극단적 우파도 있었으며, 또는 친북인사도, 반북인사도 있었다. 또 달리 구분하자면 미국이 민족의 분단과 불행의 단초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함께 미국의 일방주의를 선도하는 부시를 혐오하는 이도 있었고 또는 한미동맹이야말로 민족의 번영을 약속하는 길이라고 강조하며 느슨해지는 한미관계를 걱정하는 이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나는 이분들 모두가 귀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견해의 차이는 좁히기 힘들 정도로 분열되어 있지만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귀한 주말 저녁, 세시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하며 통일강연회에 참석해 강연을 경청할 사람이 뉴욕한인사회에 200명이나 된다는 점. 그리고 비록 자신과 생각이 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강연자의 열정적 강연에 아낌없는 박수로 화답하고 또 ‘색깔이 다른’ 질문자의 생뚱한 질문조차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고품격을 유지한다는 점등은 우리 한인사회가 이제 통일 담론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단계에 와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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