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 빨치산(Partizan)

2005-12-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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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재(내과전문의)

‘빨치산’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 도대체 몇년 만인가 생각해 보고 있다.어느 날, 그러니까 중 2 시절, 방과 후 집으로 향하던 길에는 하늘에서 휘날리던 삐라가 뿌려지고 있었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 완료를 알리는 전단이었다. 그러고보니 46년 전, 1950년 6.25사
변 후 9년만이다. 전쟁이 끝난 1953년 7월 27일 후로는 6년만이다. 3도(道)를 걸치고 1955미터의 거대한 지리산에 숨어서 떼지어 다니며 양민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도둑떼로 변했던 그들은 비적(匪賊)이었고 우리에게는 빨치산 보다는 공비(共匪)라는 말로 더 익숙했다.

그러던 그 빨치산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확 다가온 것은 지난 11월 25일, 어느 웹사이트에 실렸던 글의 제목이다. ‘파주에 빨치산 출신 묘역 조성’이라 하잖은가.내용인 즉,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보광사라는 절의 묘역에 5명의 남파간첩 출신, 빨치산 출신과 비전향 장기수의 유해를 묻은 곳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묘역>이라 표시해 두었다는 내용이
돌비석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더욱 더 기가 찬 노릇은 ‘실천불교 승가회’ 관계자들의 이유 설명이다. 좌우 이념을 떠나 한
평생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리자는 차원에서 유족들의 요구를 수용했다지 않은가.


이거 참, 해도 해도 너무한다. 성직자(聖職者)라는 사람들이 설쳐대온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이제는 중들도 한 말씀 거들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하느님을 받들고 석가모니를 모셔 말씀을 중생들에게 설파(說破)해서 제도해야 할 사람들이 받들고 모실 분은 팽개친 채 엉뚱한 짓거리만 해대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도 없고 석가모니도 믿지 않는,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사회를 향해서 민족이니 통일이니 핑계거리를 만들어 그 쪽으로 쏠리는 언행을 일삼는 이들은 한 마디로 사이비인지도 모른다. 종교적 직함은 직함 뒤에 숨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고 근본적으로 사상이 빨간지도 모른다.

걸핏하면 색깔론으로 되받아치니 터놓고 얘기하면 속은 붉은 공산주의 신봉자들로 겉으로 평화주의자로 덧칠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1945년 해방공간에서 좌우 싸움이 있다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57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꼭 마약 중독자 같다. 아니 마약 중독자들 보다 더 할지도 모르겠다. 마약 중독자들이야 우선 자신과 가족에 피해를 주고 창궐할 때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마약 중독자들이 국가 반역이나 전복 기도를 했다는 말은 아직 못 들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보리스 파수터나크’(Boris Pasternak 1890~1960)가 썼던 <의사 지바고>(Dr. Zhivago 1957)다. 읽을 시간이 없으면 좀 길긴 하지만 동명(同名)의 영화 <의사 지바고>(1965)를 보면 러시아 혁명(1905년과 1917년) 당시의 공산혁명의 비인간적 행위와 ‘쥬리 크리스티’가 명연했던 ‘라라(Lara)’의 비극상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의사 지바고>는 ‘보리스 파스터나크’의 자전적 소설이자 195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었지만 공산주의 독재국가 러시아는 그 노벨상도 받지 못하게 했다.

사회학적으로 국민소득이 7,000달러에 이르면 시민의식이 싹터 민주주의가 발화하기 시작한다는데 국민소득 1만달러에 세계경제 11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현금과 같은 작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사회학자들도 설명을 못하리라.이래저래 이해되지 않는 좌우(左右) 내전이 총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지만(러시아혁명에서는 적군(Red Army)과 백군(White Army)로 싸웠지만) 많은 사람들이 따지고 있듯, 국가 정체성이나 미래 국가 정체(政體)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조국 상황이 그렇다면 이곳 한인사회는 어떤가? 모두가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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