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옥에서 온 사자들의 변명

2005-12-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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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첫 추위에 얼어붙은 살얼음 속의 낙엽을 본다. 얼마 전만 해도 푸르던 잎들이 어느새 의지할 데 없는 헐벗은 몸이 되어 따뜻한 구석을 찾아 무리지어 물려다니더니만 간밤에 내린 비에 얼어붙은 몸이 되어 안식처를 찾아 더 이상 헤맬 수 없게 되어버렸다. 좀 더 운이 좋았더라면 지
금쯤 난로 곁을 찾았거나 아니면 엊그제 수거되어 실려간 녀석들처럼 어디에선가 편히 쉬고 있으련만... 날씨가 다시 풀리기까지는 꼼짝없이 영어의 몸으로 지내야 되겠구나. 그 모습이 며칠 전 뉴스전문 CNN이 ‘비밀국가 잠행기’에서 보여준 한반도 북녘 백성 그대로다.

고달픈 백성 속에 혼자 즐거운 김정일 사진 포스터, 병원에서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애기(1년에 세계 유아 아사자 600만명 중 10명 당 1명이 북한 아기), 탈북자를 돕다 체포된 자를 공개 처형하는 장면, 혹한 속에 자신의 분뇨물을 내다 버리는 정치수용소, 땅에 떨어진 음식물을 주워먹
거나 훔치는 북어같이 마른 아이, 길가에 방치되어 있는 젊은 여인의 시체를 쳐다보며 살아있는 자신이 기적같아 의아해하며 지나는 행인. 모두가 희망을 저버린 채 피폐, 비참, 굶주림, 좌절감을 안고 사는 그들이 영락없이 얼음 속에 얼어붙은 낙엽 신세다. 저 곳이 내가 살기를 거
부하고 떠나온 북녘 땅이란 말인가.


한 사람 폭군만이 자유인이고 모두가 노예가 되어 억압받는 백성의 고통을 그래도 잊지 않고 있는 국제기구가 있다. 인권사상 발상지 유럽연합과 미국의 뜻에 의해 UN에서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결의안이 통과된 것을 본다. CNN의 보도로 확인된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북한 주민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보장을 촉구하는 한편 인도적 지원단체와 기구들이 자유롭고 무조건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과 지원물품이 필요한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을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 회원국으로써 마땅히 준수해야 할 사항들을 조심스럽게.‘북한의 인권개선은 다른 우선순위와 조화를 이루면서 추진할 수 밖에 없다’ 인권투쟁에 화려한 경력의 대통령에 의해 파견된 남측 대표의 기권 이유이다.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꼴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인권문제를 남용하고 있다. 북한 압살을 위해 내정 간섭과 정권 전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거부한다’ 백성이 무섭긴 한가 보다. 분명히 지옥에서 온 사자들의 구차한 변명은 듣기 조차 민망하다.자신의 하루 생활이 편안한 권력자에게서 인권을 제공받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인권 결의안’은 뻔뻔스런 그들을 경계하고 지도할 것이다. 헐벗은 인민의 고통이 외면될 때 혁명의 시기는 익어가고 있음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새 봄이 되어 푸른 잎이 다시 생겨날 때는 피신해 있던 민족의 정기와 강산의 아름다움이 한반도 전역에 꼭 다시 돌아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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