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민족의 미래

2005-12-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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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규(아리스토 아카데미)

세계의 석학이고 프랑스의 지성이라는 기소르망이 최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기념 초청 강연에서 한국문화가 네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이 네가지가 갈등없이 풀려야 한국이 미래지향적인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그가 지적한 네 가지 중 하나가 이민세대의 문제였다. 언제 우리들 이민세대의 문제가 외국인의 눈에까지 그가 지적한 계층, 지역간 단합문제 등과 함께 한국에서 풀지 않으면 안될 심각한
과제로 떠올랐단 말인가?

사실 오래 전부터 한국 국내인들의 해외동포들을 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껴왔었다. 다만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그런데 최근 한국의 동아시아 연구원이 실시한 “2005년 한국인의 정체성”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 국내인들의 거주국 국적을 취득한 해외동포들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변했는지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거주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라도 계속 한민족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사람은 겨우 9% 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외국인이라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면 한민족으로 인정하겠다는 수치 28%
보다도 훨씬 적다. 거주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도 한번도 한민족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자녀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미국사회에서 일익을 감당하도록 교육시켜온 우리로서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현상이다.


현재 해외동포는 634만명이 173개국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인의 첫 해외 이주는 1863년 러시아의 연해주에 13가구가 이주한 것이 효시이지만 근대국가 이후 대량으로 해외이민이 시작된 것은 미국이 이민법을 개정하여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남미(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에 농업이민을 보내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이라고 볼 수 있다.
60,70년대 많은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외국으로 향했다. 그 후 40여년, 낯선
땅에서 낯선 문화와 악전고투하며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자녀들을 교육시켜 거주국 주류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키웠다. 그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려고 노력도 했다.
최근 워싱턴에서 한인 2세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정체성 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90%
이상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브라질 거주 일본인들이 갖고있는 땅이 일본국토의 면적보다 더 넓다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이제 우리도 자녀들을 훌륭히 키우면서 거주국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 한국인의 삶의 지평을 어
느 정도 넓혔다고 고개를 들려고 하니 우리보고 한국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만든 것일까? 수년 전 미국의 한 대학교수가 한국의 방송,언론사 간부들을 대상으로 해외동포들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들이 해외동포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갖고있는 것에 놀란 적이 있었다.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드라마에서 해외동포들을 희극화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지식인들이 이곳에 초청받아 와서는 그럴듯 하게 동포들을 위로하면서도 국내에서는 비판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묻고 싶다. 원정출산 하고 병역기피를 위해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이 634만명 중 몇명이나 될까? 올빼미 이민이니, 두루미 이민이니 하는 이민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민의 형태를 다양해지고 세계화되어 가는 새시대에 비록 나와 다르더라도 다른 삶의 모습으로 인정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좁은 땅에서 지역, 계층간의 갈등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국내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해외동포들을 폄하해서 또 다른 갈등을 키우는 일이 한민족의 장래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더 넓게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서로 인정할 수 있을 때 한민족의 장래가 더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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