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1.5세 어디 있나

2005-12-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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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취재1부 차장)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일식 철판구이 식당을 찾았다가 프랑스에서 온 가족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배운 불어 실력이 아직도 유용한 지 확인할 겸 그들에게 불어로 ‘프랑스에서 왔습니까’라고 물으며 대화를 걸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프랑스 부부는 20여년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으로 와 결혼을 했으며 아이들과는 영어와 불어를 섞어가며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기자가 인상 깊었던 것은 프랑스 남성이 자신을 ‘카멜레온’으로 표현한 점이었다.그는 불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미국와 프랑스의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미국인으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인으로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주위 배경에 따라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카멜레온’과 흡사하다는 말이었다.
지난 90년대 초 미주 한인사회에 ‘1.5세’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부터 한국과 미국 문화에 익숙한 차세대 한인들이 미래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한인회장으로 출마하는 후보나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 등 언론의 시선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면 한결같이 ‘1.5세’라는 단어를 연설에서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취재를 다니다 보면 도대체 1.5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할 정도로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20~30대 한인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정확한 발음으로 영어를 좀 잘한다 싶으면 한국말은 ‘앙녕하시요’라고 하고 반대로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면 영어는 좀 서툴다. 두 언어를 모두 잘 한다 싶으면 어느 한 쪽 문화에 대해 잘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닐 바에야 차라리 확실하게 한 쪽만을 완벽
하게 이해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지혜로운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직까지 ‘코리안 아메리칸’들은 말 그대로 코리안과 아메리칸을 합친 것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은 기자의 지나친 욕심일까?

물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얘기도 있지만 두 사회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불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단색 카멜레온’들이 한인사회의 대다수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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