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2005-12-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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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롱아일랜드)

어느새 2005년의 마지막 달에 접어들었다. 세모가 되면 입버릇처럼 ‘다사다난했던 해’라는 말을 되뇌이곤 하는데 금년이야말로 그런 해였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태풍도 불고 해일도 일고 지진과 토네이도가 여기 저기서 대작하는 가운데 지구의 표면을 초토화하고 인명의 피해를 안겨주는 일들이 인류 역사에 이어져 왔지만 금년처럼 엄청난 천재지변을 당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인류의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해도 자연 앞에서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음을 겸허한 마음으로 머리를 수그릴 뿐이다. 그런데 이같은 참혹한 재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단순히 자연의 위력과 참혹한 이재민만을 보았단 말인가? 재난의 소용돌
이 속에서 우리 가정은 무사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단 말인가? 인간의 사지백체 중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눈의 가치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사람을 두고 그 인물됨을 평할 때 흔히 “이목구비(이목구비)’를 거론한다. 그 중에서도 눈이 으뜸이라고 본다. 누구든지 사람을 대할 때 맨 먼저 상대방의 눈을 보게 된다. 샛별같이 빛나는 눈이 있는가 하면, 죽은 동태 눈처럼 흐리멍텅한 눈이 있어 눈으로써 그 사람을 평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살림엔 눈이 보배”라는 말이 있거니와 같은 세상에서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만 보는 눈 여하에 따라서 지혜롭게 살기도 하고 어리석게 살기도 한다. 남에게 아름답게 보이려고 비싼 돈을 들여 쌍거풀 수술을 하고 고급 화장품으로 한껏 눈화장을 예쁘게 한다고 해도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눈뜬 장님이요 ‘청맹과니’인 것이다. 외형이야 어떻게 생겼건 사물을 꿰뚫어보는 투시력을 가진 눈이라야 천재지변의 이면에 숨겨진 절대자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게 될 것이다. 눈에 대하여 예수는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또 멀쩡한 눈을 가지고도 볼 것을 보지 못하는 군중들을 향해 “너희가 아침 하늘이 붉으면 날이 궂겠다, 저녁하늘이 붉으면 날이 맑겠다” 하며 “하루의 천기는 볼 줄 알면서 어찌하여 시대의 징조는 볼 줄 모르느냐?”고 한탄하였다. 그리고 보지 못하는 이유를 밝혔는데 “사람의 마음이 완만해져
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그 눈은 감겨 있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보고 못 보고는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눈의 쌍거풀 수술을 하기 이전에 마음의 수술부터 받아야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삼중고(벙어리, 귀머거리, 장님)의 장애인 헬렌 켈러 여사는 마음의 눈이 밝았기 때문에 눈이 멀쩡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역사의 이면과 영적 세계까지도 투시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것이다.영적 안목으로 이 세상을 보는 사람은 아무리 이 지구의 표면이 격동하고 땅과 바다를 뒤집어 엎는다 해도 그 파문의 깊은 밑바닥에는 저류하는 “진동치 못할 나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중세기의 성자 어거스틴(St. Augustine)은 권력으로 쌓아올린 로마제국이 무너져내리는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장차 나타날 “신의 영원한 도성”(The City of God)을 바라보면서 소망 중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던 것이다.어영부영하다 보면 12월이 후딱 지나고 2006년이라는 새해를 맞게 될 터인데,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다람쥐 채바퀴 돌듯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지나온 인생의 역사 가운데서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했다면 다가오는 세상이 아무리 좋은 여건으로 주어진다 해도 참된 인생을 살아가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마음을 정화하여 속눈을 떠서 역사와 사물의 이면을 바라보면서 새해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현명한 인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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