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정희를 극복하자

2005-11-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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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평통위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장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학의 총장 격이다”최근 한국 국정홍보처의 한 공무원이 인터넷에 이같은 내용을 실어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 비교는 박정희와 노무현이란 두 사람의 스타일을 비교한 것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낮추고
노무현대통령을 올리는 내용인 것이 자명하다. 듣기에도 질이 낮은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박정희의 비극을 가져와 당시 시대를 규정하고 모욕을 주려는 움직임이 있고, 일부 정치세력은 이를 방조하는 모습이다. 인간적 비극의 정점을 이루었다고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지나간 과거로만 묻어둘 필요는 없다. 외교 자료를 공개도 하고 영화를 통해서 그 사건들이 갖고 있는 의미를 재조명할 수는 있다. 문제는 보도를 넘어서 정치적인 색깔이 드러나고, 예술이란 이름으로 그 시대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집단적인 편견을 강제적으로 주입시킬 경우, 이는 역사의 재정립이 아니라 역사를 훼손시키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박정희를 옹호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한국의 과거 역사가 박정희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명명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이른바 ‘박정희 때리기’는 역사에 대한 공정한 재평가가 아니라 현 시대를 사는 정치 지향적인 사람들의 싸움의 소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박정희를 욕함으로써 그 반사 이익을 챙기고, 박정희의 그늘에 안주하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싸움은 모두를 패배자로만 만들어 놓을 것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21세기의 우리는 1970년대의 시대 논리에 추락하면 안될 것이다.
박정희는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대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낮춰야만 되는 대상도 아니다. 박정희와 박정희 시대는 역사를 통한 우리의 거울로써 개선돼야만 한다. 오늘날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놓고 다투는 싸움이 아니라 ‘박정희’라는 한
시대 인물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하는 방안이다. 우리는 현 시대의 필요와 미래의 이익을 위해서 역사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영광과 욕설이 함께 묻어있는 역사를 두고 정치판의 이해득실로, 또 배웠다는 기만으로 독선한다든가, 그리고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침소봉대한다면 이는 역사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짚고 나가야 할 것은 수치스러운 과거 그 자체보다는 역사를 두고 장난을 치는 왜곡된 의식이다. 박정희 시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전체 구조 속에서 평가돼야 한다. 각 시대에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성공과 실패가 평가된다.

한국 현대사의 그늘과 문제점을 다루는데에 있어서 박정희를 제물로 바칠 수는 있다. 그러나, 박정희가 주도했고 대다수의 국민이 함께 이룩했던 산업화와 경제 발전은 의식이나 이념으로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의 독재는 민주화를 탄압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민주화의 열망과 실천을 더욱 강건하게 만들었던 필요악이기도 했다. 박정희는 신화도 아니고 악령도 아니다. 단지, 현재 우리의 시대를 비추는 중요한 거울 중의 하나다.

최근 ‘박정희 때리기’에 골몰하는 사람들과 또 이러한 현상을 방조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줄 말이 있다.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공정하게 재평가 하고, 그 속에 포함된 자랑과 수치를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관점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에게 제대로 복수하고자 한다면 박정
희를 넘어서는 성취를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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