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남의 마지막 용단

2005-11-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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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2005년은 광복 60주년 되는 해이고 이승만 박사의 탄생 13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그는 70세에 단군 이래 처음으로 국민들에 의해 세워진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다들 알겠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몇 자 상고해 본다.

1955년 배재학당 73주년 개교 기념식에 배재를 방문하셨다. 하루아침 사이에 학교 앞 정동길이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다.나는 수많은 학생들 사이로 삼엄한 경호망을 뚫고 그를 향해 달려가 그의 가슴에 안겼고 그는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때 감격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미국유학 5년만에 하바드와 프린스톤대학에서 학위를 끝내고 무서운 일제의 감시 하에서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다. 오직 민족의 독립만이 그의 삶과 꿈의 전부였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종살이에서 이끌고 나온 것처럼 압박 속에 있는 우리 민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의 역사 속에 보내준 선지자이다.


해방 직후 좌우의 극렬한 싸움과 혼돈 속에서 소수이지만 흔들리지 않는 기독교정신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대한민국의 기초를 굳건한 반석 위에 세워놓는다. 6.25 발발 후 그는 탁월한 외교실력 발휘, 유엔에 호소, 미국과 한미혈맹을 맺는 선견지명, 드디어 종전이 국난을 극복함은 그의 위대한 업적이다. 월남의 고딘디엠 정권의 몰락과는 대조가 된다.

미국 이민자들은 모두 그에게 빚진 자들이다. 부정선거를 반대하는 4.19가 터졌을 때 그는 막강한 군대를 동원해 데모대를 총검과 무력으로 진압하고 한강을 젊은이들의 피바다로 만들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민족 사랑은 이를 원치 않았다. ‘모든 것을 내 잘못으로 돌리고 물러난다’ 부정부패를 저질렀던 아랫 것들도 나무라지 않았다. 더 심한 출혈을 막기 위해 그가 하야함으로써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덜어짐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고 자유민주주의를 싹트게 할 수 있었다. 그 때 그의 결단력은 그의 인품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과오를 범할 수도 있으나 그것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지체하지 않고 모든 국민들의 생각이 옳고 부정선거가 잘못 되었다는 올바른 판단을 내려 민주주의 성장에 지름길이 되게 한다. 역사의 전환점에서 그의 용단은 나라의 진로를 바른 길로 바꿔 놓았다.130주년 탄생 기념식은 퀸즈식당에서 조촐하게 치뤄졌고 그의 위대한 업적에 비해 너무 초라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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