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립인가, 융화인가

2005-11-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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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오래 전에 읽은 미국 창작동화 이야기다. 자세한 내용은 잊었지만 대략은 이렇다. 동물들이 모여서 파티에 대한 의논을 하였다. 그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어떤 음식을 준비할까’라는 대목이었다. 제각기 좋아하는 음식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한참 왈가왈부하다가 결국은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제각기 가지고 모이기로 하였다. 파티가 열렸다. 동물들은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프로그램을 즐겼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말하였다. ‘오늘처럼 좋은 파티는 없었다’고.

이 동화를 다시 떠올렸다. 결국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최고라는 뜻인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각자가 푹 젖어있고 소중히 지니고 있는 ‘고유한 문화’로 바꿔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동화의 주인공인 동물들처럼 자기 것만 고집하면 어떻게 되나. 그들은 어떻게 뭉칠 수 있겠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그래서 앞의 이야기를 제멋대로 이어본다. ‘네 것이 그렇게 맛있니?’ ‘응, 한 번 먹어 보겠
니’ ‘그래, 참 맛있구나! 이런 맛은 처음이야’ 동물들은 서로 서로 음식을 맞바꿔 가며 다른 음식 맛을 보고 나서 하는 말이다. ‘내 것도 좋지만 네 것도 그럴 듯하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음식이 있구나!’ ‘그렇고 말고, 우리들이 새로운 음식을 만들 수도 있겠고…’이 날 파티에서 동물들은 모두 행복하였다. 그들은 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안경을 하나씩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그 안경을 가지고 싶은가요?


요즈음 필자 생각의 중심은 한국문화 교육이 ‘고립’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융화’의 길임을 알기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을 시도하지만, 언제나 미흡함이 따라서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한국문화 교육을 강조하는 데 그게 어떻게 융화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나. 언뜻 생각하기에는 유아독존식 사고방식이 될 것 같은데….

다시 앞에 예로 든 동화에, 이번에는 곁다리로 어떤 동물 이야기를 덧붙이겠다. 이 동물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분명치 않다. 그것 뿐만 아니라 자기가 지니고 있는 것이 소중함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별로 좋아하는 음식이 없고, 가진 것도 없어. 누구든지 가지고 온 음식을 조금씩 맛보면 돼’ 그래서 그는 파티가 있는 날 빈손으로 왔다. 그를 본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화의 값어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동물과 비슷하지 않을까. 빈손인 친구는 어떤 대접을 받게 되는가. 친구들 사이에 반드시 이해관계가 따르지는 않지만, 빈손의 친구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상례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함께 모여서 살고 있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고, 없는 것을 서로 보태고, 기쁨을 함께 하고, 괴로움을 서로 나누면서 살고 있다. 이럴 때 마음에도 손에도 아무 것도 없는 친구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자가 한 가지씩 고유의 음식을 가지고 갈 때는 준비한 음식이 있어야 한다. 각자의 고유문화를 소개할 때는 그 내용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국문화를 지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바로 내 뿌리를 찾는 일이고, 내 자신을 바로 아는 일이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고, 각 민족이 융화하는 길이고 다 같이 미래를 여는 길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말한다. 한국문화 교육은 좋은 시민 양성의 길이지, 똘똘 뭉쳐서 물 위에 기름 뜬 것처럼 고립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라는 설명이 된다.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자긍심’의 문제이다.

긍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어동작이 반듯하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알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풀려서 느즈러질 수 없다. 이민 온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할 수 없다. 이것은 좋은 시민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지역에서 행하는 한국문화 교육은 다른 문화와 융합하는 길이고, 좋은 시민 교육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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