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인권결의안과 스티브 김

2005-11-23 (수)
크게 작게
손영구(탈북난민보호 미주협회장)

2005년 11월 17일 드디어 191개국이 참가한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공식적으로 의제에 상정되고 토론과 표결을 걸쳐 찬성 84표로 통과되었다. 자유를 박탈당한 북한주민들은 탈북자들에겐 무한한 기쁨과 소망의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유엔에 가입한 북한은 유엔총회의 의결을 존중하고 결의안이 지적하고 있는 북한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국제사회 앞에 책임있는 인권 개선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폭군 독재자 김정일과 추종자들은 북한인권결의안이 미국과 EU가 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다른 나라의 국내문제에 부당하게 간섭하려 한다. EU가 미국의 압살정책에 편승해 내정 간섭과 정권 전복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남을 비방키 이전에 실제로 김정일 정권이 다른 국가에서 베풀고 있는 자국민의 인권, 복지, 평안,
자유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아니면 국민의 눈에서 눈물, 입에서 한숨이 터져나오게 하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국호를 가진 나라가 아닌가? 유엔에 가입된 국가가 아닌가? 그런데 국민의 지도자가 아버지를 우상화하기 위해서 수천억을 쓰면서도 기아로 죽어가는 백성은 그냥 내버려둘 수 있는가? 세계 어느 나라에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나라가 있는가? 앉아서 죽기 보다는 나가서 벌어먹고 살겠다는 실낱같은 소망을 갖고 탈북하는 자들을 강제로 송환하고 구속하고 고문하고 또 동네 주민을 다 모인 앞에 공개처형시키는 나라가 이 세상에 또 있는가?

감옥, 관리소, 수용소에 갇힌 자들은 끝없는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고문, 처형을 당하고 재판, 언도, 출옥날짜도 없이 감금되고 죽어서야 나가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세계의 이목, 국제사회의 시선이 북한정권에 있음을 깨닫고 정신차리는 지도자, 사기극을 끝내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 이번에도 한국의 MH정권은 경술국치의 정책을 폈다. 기권은 반대와 같은 것이다. 그런 태도는 결국 기권 62표, 반대 22표란 엄청난 동조를 만들었다.
민주투사란 DJ의 햇볕정책, 인권변호사란 MH의 포용정책을 결국 악당 김정일의 세력만 확장해 주고 북한주민은 더욱 깊은 사망의 골짜기에 밀어넣고 말았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기권한 처사가 남북관계를 고려한 적절한 조치였다고 두둔했다. 북한주민의 민주화, 인권개선을 전제로 하지 않는 남북대화, 협상, 대북지원(쌀,비료,전기,자금 등)은 오히려 반드시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온다.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기까지는 참으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수고했다. 1999년 3월 한국에서는 김상철 변호사, 나석호 변호사 등이 주축이 되어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가 창설되었고 4월에는 뉴욕에서 필자가 탈북난민보호뉴욕협의회를 창설하면서 탈북자의 난민 인정 청원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2년간에 걸쳐 한국역사상 최고의 숫자 1,180만495명의 서명을 받아 UN, UNHCR, EU, 미국의회와 행정부에 2001년 5월 17일~18일에 전달했다. 또 2002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육사 24기 역전의 용사, 시카고 우정국에 근무하던 스티브 김(김상후)씨가 UN본부 담장을 넘어들어가 UN본부 앞에서 7발의 권총을 발사하고 북한인권의 비참상을 UN대표부들에게 알리며 체포돼 2년간의 옥고를 치르는 살신성인의 거사가 있었다.

병든 아내, 대학교를 다니는 두 자녀의 보양책임을 가진 가장이 본연의 임무를 뒤로 한채 북한의 민주화, 주민의 인권개선과 보장, 독재정권 종식을 위해 단독 거사를 행한 것이다. 7발의 총알 발사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고 치밀한 계획적 의도였다. 두 발은 자기 백성을 유괴한 듯 인간의 정신, 가족의 사랑까지 잔혹히 빼앗고 인권을 박탈하고 인간지옥을 만든 김정일의 독재집단에 무엇이 무서워 비위 맞추기에 바쁜 남한 지도자에게 두 발, 그리고 유엔에 대한 유감과 앞으로 꼭 북한동포들을 구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민주주의 통일 달성에 힘써달라고 세 발,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빌면서 7발을 쐈다고 했다.이번 인권결의안 통과는 그의 살신성인의 헌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후 2002년 6월에 미국의회(상,하원)에서 북한인권과 탈북자 구원을 위해 9개항이 통과되었고 2003년 7월에는 본회와 미 Ngo 20여개 단체가 North Korea Freedom Coalition(북한자유연합)이 결성되어 북한인권법을 기초하였다.2004년 4월 27일~29일까지 국회의사당 앞에서 제 1차 북한자유의 날 행사가 있었고 2004년 7월 미국회에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었다. 그 후 2005년 4월 28~29일 워싱턴에서 제 2차 북한자유의 날 행사가 있었고, 2005년 7월 19일 Freedom House 주최 북한주민의 민주화, 탈북자의 비참상
을 전세계에 알리는 포럼이 개최되었다.

2005년 11월 17일 드디어 EU가 발의한 북한인권결의안이 UN 총회를 통과했다. UN대표부 사람들에게 7발의 총성을 울리며 북한인권 비참상을 알리고 자신은 2년 동안 감옥생활을 자처한 스티브 김 선생님께 그 공로를 돌리고 싶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