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커뮤니티센터 축하음악회

2005-11-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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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황석(약사)

<인생은 늙어도 하늘은 푸르러/가을하늘 높은 곳에 기러기 날고//가을바람 차가워 귀뚜리 슬피 울건만/올해에도 국화 향기는 아름답습니다>
나성에 사는 친구들이 모여 선배의 8순 잔치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참석 못하는 마음 미안하여 도연명을 흉내낸 축시를 지어 보냈는데 그중 한 구절을 적어봤다.

60 넘은 나이로 가을 시를 흉내내서 그런지 팔순 노인처럼 내 마음 허전하다. 먼 친구를 만나 차와 음악을 나누고 싶다. 도시로 가득찬 이민의 땅에 가을이 와 봤자 고향하늘을 날던 기러기 보기 힘들테지만 친구의 가슴에는 그래도 두고 온 고향 이야기가 남아있을 것 같다.그런데 마침 필라델피아에 사는 친구로부터 가을음악회 소식이 왔다. 11월 26일 뉴욕신광교회에서 한인 커뮤니티센터(KCCNY:이사장 최수지) 빌딩 구입 축하음악회를 한다는 것이다. 출연자들이 마음에 든다. 바하와 쇼팽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최운성은 줄리아드를 나온 박사교수다. 가을밤 가냘픈 바이얼린의 선율로 차이코프스키와 마쎄네의 작품을 들려줄 쥬디 강은 세계
무대를 예약해 놓은 떠오르는 유망주다. 두 사람 모두 연인의 미모를 갖춘 여성들이다.


그런데 여성출연자 못지 않게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남성 출연자들이 있다. 바리톤 주염돈과 듀엣 빠스또르의 이성철, 박상서가 바로 그들이다. 주염돈은 고교 동창생이요 빠스또르는 기독문우회 식구들이다.
주염돈은 배재고등학교 일년 선배다. 그런데 나이가 동갑이라 함께 늙어가면서 친구가 돼버렸다.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에 이민와 30 넘은 나이에 템플대학에 들어가서 성악을 전공하고 꿈의 무대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좌에서 노래를 불렀다.주염돈을 8기통짜리 바리톤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성량이 크고 기름지다. 주염돈은 이번에 가곡 ‘청산에 살리라’를 부른다. 테너로 듣던 ‘청산’을 바리톤으로 들으면 청산은 더 웅장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이날 밤 주염돈의 압권은 아무래도 ‘라르고-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될 것이다.

듀엣 ‘빠스또르’가 부르는 ‘향수’와 ‘사랑의 테마’는 가히 국보급이다. 빠스또르(스페인어 pastor)의 이성철, 박상서는 신학교를 나온 목사 장로다. 70이 넘었는데도 빠스또르의 화음은 왕년의 불르벨스를 연상케 한다. 고향을 노래한 정지용의 ‘향수’는 향토문학의 극치이지만 사랑을 노래한 ‘사랑의 테마’도 대단하다.<사랑 그것은 정녕 외로움/채울 수 없는 바람/아침햇살에 빛나는 꽃잎/남몰래 타는 촛불//사랑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네/사랑 보내지 않아도 떠나가네/사랑 혼자서 이룰 수 없는/오오 사랑이여...>

나이는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아 가사만 읽어도 숨이 막혀온다. 이걸 빠스또르의 듀엣으로 들으면 얼마나 황홀할까? 음악회가 끝나는 시간에는 모두 일어나 ‘만남’을 노래할 것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11월 26일 밤에 아는 친구들을 모두 음악회로 불러내어 망향의 회포를 풀고 오랜만에 ‘만남’을 합창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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