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명의 빛

2005-11-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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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 대표)

항상 새로운 것 같으면서도 또 한결같은 생활의 중심, 철학, 시간 스케줄이 바로 나의 삶이라는 생각이 늘 내게 있는데 요즘은 아주 특별한 시간들을 보내며 사는 나를 본다. 그것은 다름아닌 내가 사랑하는 시누님의 병환 때문이다.늘 한인청소년과 가정들을 분주히 만나며 사는 나의 삶이기에 맏며느리의 몫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내가 전혀 눈치보지 않고 부담 느끼지 않게 중간에서 배려를 해주고 내 몫을 대신 자연스럽게 해주신, 그래서 어찌보면 이렇게 14년 이상이나 꾸준히 한결같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가장 큰 힘을 실어준 분이 바로 남편의 바로 손위의 시누님이었다. 그런 시누님이 지난해 10월부터 발견된 암으로 인해 지난 5개월간은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는 투병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가족 중에서 그 자세한 경위와 진상을 제일 먼저 알게된 나는 식구와 친지들이 충격받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스레 이 일들을 시누님과 함께 하며 무너지는 가슴과 아픔을 조심스레 붙들고 있느라 겪었던 혼자만의 시간들이 내게는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청소년 사역의 많은 일들과 함께 개인적으로 지고 가야하는 이 아픔과 어려운 시간들은 자칫
나를 짓누를까 나를 긴장하게 했으며 이러한 상황과 조건들에게 나를 정복당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이루어가고 싶은 간절함에 오직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힘을 구해야만 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분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나는 청소년 사역도, 내가 사랑하는 시누님의 투병생활에도 무기력하게 넘어질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위기의 시간들이었음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지난 몇개월 내게 있는 모든 에너지와 간절한 마음들을 모아 겪어왔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내 삶에 또 다른 기적의 증거가 있음에 다시 한번 놀라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함께 일하는 상담자와 선생님들, 그리고 봉사자들은 나와 함께, 상담, 교도소 사역, 광야체험 프로그램 등... 많은 일들을 다른 어떤 때 보다 아름답게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것이다.이 일들의 결과로 날마다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는 즐거움과 기쁨은 지금 가지고 있는 어려운 상황과 조건들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 삶에 이러한 사명이 주어짐에 다시 한번 감사가 드려진다. 아울러 투병중에 있는 시누님에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한다. 병원에 치료 받으시는 모든 것들을 함께 하는 그 시간들에 감사하는 이유는 내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오랜 세월동안 내 등받이가 돼 주신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심정이 되어 나를 감사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이 어떻게 저렇게 되어질 수 있을까? 저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누님의 몸은 가엾게 변하였지만 옆에서 시중을 드는 나는 때때로 신비와 신기함을 누리는 축복을 느낀다. 배와 다리가 마른 상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이 차고 부어있어 기동도 불편한 상태이지만 항상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답고 맑은 힘 있는 눈이기 때문이다.육체는 말할 수 없이 황폐해지는 가운데서도 나타나는 얼굴과 눈의 빛과 목소리는 이전의 시누님의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그리고 하나님이 주는 생명의 빛이고 힘인 것을 나는 누구보다 알 수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청량한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끊기지 않는 우리집은 투병중인 환자가 있는 암울한 분위기가 아닌 감사와 찬송과 기쁨이 살아있는 집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만든 음식을 아주 맛있게 들고 힘을 내주시는 시누님 때문에 나는 이전에 부엌에 들어가기 싫어하고 음식 하기를 그토록 싫어했던 모습이 아니라 신나게 통통거리며 마치 요술음식을 만들어내는 듯한 신기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삶에 집착하지 않고 평안함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시누님의 밝고 맑은 삶에 조금이라도 신명을 더 보태드리고 싶어 맛난 음식을 즐거움으로 하고 있는 나는 요즘 시누님과 살가운 시간들 속에서 다시 한번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행복은 세상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는 은혜 속에서 온다는 것을, 얼마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하나님의 관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느끼는 요즘의 내 삶은 온통 감사의 삶인 것이다. 투병 가운데 생명의 빛을 발하고 계신 시누님께 진실한 사랑으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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