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미국에 산다는 것 I

2005-11-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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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차장)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보면 짜증나게 만드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버젓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사람들이다. 다리가 길다고 자랑하는 건지 모르겠지만(사실 대부분 그다지 길지도 않다) 그 다리를 피해 몸을 돌려 빠져나오다 보면 저절로 눈살에 힘이 간다. 정신
건강 뿐아니라 피부 미용에도 영 아니다.또 버스안에서 휴대폰 통화나 친구와과 대화를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다. 출퇴근길에 잠시 눈을 붙이던지, 신문을 보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뒤에서 알아듣지 못할 말로 떠드는 소리를 참으려면 어지간한 인내심으로는 어렵다. (사족이지만 이럴 때는 iPod을 꺼내야 한다. 차라리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상당 기간 유심히 살펴봤더니 이렇게 짜증나게 만드는 사람들은 동양계나 흑인, 히스패닉, 유럽계 등이 많았다.
통계학적인 기준에 따라 엄격히 계측한 것이 아니니까 편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을 정도라고 이해해줬으면 한다.
반대로 소수계이기 때문에 백인들보다 눈에 많이 띄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백인들도 막돼먹은(?) 사람들이 많은데 소수계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행태를 짜증난다고 얘기하면 ‘역 인종 차별’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오히려 소수계인 우리도 당당하게 미국 사회에서 세금내고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니까, 그런 것까지 눈치보고 살아야할 필요가 없다고 강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소한 일이지만 위에 지적한 그런 문제가 에티켓과 관련돼 있다는데 있다. 미국 주류 백인들이 소수계보다 도덕적이고, 더 많이 배웠고, 남을 배려하는 성인군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과의 생활에서 부딪히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어떻든, 필요에 의해서든 아니든, 에티켓은 결국 남에게 불쾌감을 줄이기 위해 관행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다.

다수보다 눈에 많이 띄는 것이 소수계다. 행동거지가 다르기 때문에 남들보다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사소한 에티켓을 지키지 않아 전체 한인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일은 조심하는 것이 좋다. 억울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미국에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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