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살았던 암흑시대

2005-11-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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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전(FGS문학동네 회원)

나는 1922년생, 올해 83세이다. 일제시대를 생각하면 보통학교 때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는
접어두고 일제를 위해서 노동하던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매일 학교를 가긴 갔지만 공부를 하
기보다는 산에 올라가 솔방울을 따고 송충이를 잡고 송진을 뜯는 것이 일과였다. 이 일을 일제
의 전쟁 준비를 위해 해야 했다.
온종일 산을 헤매며 깡통과 자루를 채워 기진맥진해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에 돌아와서는 솔방
울과 송진 뜯은 것을 저울에 달았다. 배당받은 양을 채우지 못하면 남녀 학생 모두가 엎드려
뻗치고 매를 맞았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해서 치가 떨린다. 그 악몽과 고통
속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졸업장을 받았다. 눈물이 나도록 기뻤다. 상급학교로 진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로 집까지 20리 길을 뛰어가 아버지께 통신표와 졸업장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아버지,
저 중학교에 가겠습니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노발대발 호통하시며 부엌으로 가셔서 졸업장과 통신표를 아궁이에 넣고 태워버렸다. 나는 너무나 놀라고 무서워 아무 말도 못했다. 그 때 그 심정을 어찌 다 표현하겠는가.

울지도 못하고 떨고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지금 시대가 어찌 돌아가는지 아느냐? 이 동리에 일본놈들이 처녀들을 모집하라는 명령이 내렸는데 무슨 학교냐? 무슨 정신없는 소리냐?”아버지는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말고 살림살이와 바느질을 배워 시집 갈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 후 꼼짝없이 집에 갇혀 어머니께 살림살이와 바느질을 배웠다.
어느 날 아침에 대청마루에 서서 건너마을을 쳐다보았다. 그 마을이 온통 일장기로 덮혀 있었다. 잔치가 난듯 동리가 떠들썩하였다. 친구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잠깐씩 보이는데 푸르스름한 원피스를 입고 양손에는 일장기를 흔들며 웃고 있었다. 발에는 그 당시 귀한 운동화도 신고 좋
아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친구 어머니가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고 계셨다. 그 친구는 차에 올라타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중에 알고보니 정신대에 끌려가는 것이었다. 며칠 뒤, 또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나는 속으로 끌려가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일제는 정신대에 가면 공부도
시켜주고 간호사 공부도 할 수 있다고 속였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도 그 감언이설에 속아 끌려간 것이었다.

동네 친구들이 정신대로 끌려가는 것을 본 아버지는 내 혼처를 구하느라 바빴다. 어느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혼처가 났으니 빨리 시집을 보내자고 말하였다. 어머니는 펄쩍 뛰며 신랑될 사람을 한번 보지도 않고 어찌 결혼을 시키느냐고 아버지와 다투었다. 그러나 며칠 후 아버지
가 신랑측으로부터 사주단지를 가지고 와 혼인이 결정되었다.
열아홉이 되는 해 5월, 얼굴도 보지 못하고 말소리도 들어보지 못한 한 남성과 결혼했다. 그 좋은 처녀시절을 억지로 접고 시집을 와 시부모와 시누이를 모시고 시집살이를 하였다.

어느날 시어머니가 “너 시집올 때 해 온 반상기 중 놋으로 만든 것을 나라에 내놓아야 겠다”고 말했다. 친정에서는 시집 올 때 큰딸이라고 많은 살림살이를 해주었다. 이들 중 놋으로 만든 것은 다 내어주었다. 그 후 조금 지나 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시아버지가 일본이 전쟁을 위해서 귀금속과 보석을 바치라고 한다며 결혼반지를 달라고 하였다. 한마디도 못하고 내어드렸고 다음날 통장이 내 결혼반지를 가져가는 것을 보고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끼고 끼지도 않았던 결혼반지를 생각하면 지금 이 나이에도 가슴이 쓰리고 아파온다.

그 후 전쟁이 어려워지면서 일제는 주민들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강화로, 강화에서 장단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머나먼 봉동아라는 곳까지 이주해 가야 했다. 이렇게 가족이 옮겨다니는 동안 살 곳이 없어 어느 집 외양간 옆에서 소와 함께 살았던 적도 있었다.1945년 해방이 되었다고 온 나라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나는 너무 고생을 하여 기쁨도 느끼질 못했다. 일제를 생각하면 그저 한가지 생각만이 머리에 떠오른다. 다시는
그 어떤 민족에게도 이렇게 끔찍한 아픔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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