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떠나는 연습

2005-11-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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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수필가/교육가)

“인생의 행복은 물질의 많고 적음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아름답고 멋있게 이루어냈을 때의 성취감에서 온다”는 말은 퍽 설득력이 있다.그 성취한 일이 매우 보람있고 값있는 일일 때 더욱 행복을 느낄 것이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힘들고 어려울수록 그 보람과 기쁨이 큰 것도 사실인 것 같다.한국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사 22년 경력을 소지한 자가 한국학교 교사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 나는 미국에 와서 또 국어교사가 된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현지에 와서 보니 상황은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 자녀들의 모국어 교육은 꼭 필요하고 누군가가 이 일을 담당해야 하는 것도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이 일을 위해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주셨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상사 자녀들의 국어까지 도맡아 가르치는 일에 전
념하였다.평생 교장, 교감은 않고 평교사, 평교수만 하겠다던 내가 어쩌다가 잘못 실수(?)로 큰 한국학교 교장을 하지 않았나, 한국학교협의회의 회장직을 맡지 않나,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능력이 좀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려운 일도 능히 해내게 해주신다는 증거를 보여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한인학교 동북부지역협의회란 한국학교 전국협의회 13개 지역 협의회의 하나로서 동북부에 분
포되어 있는 각 한국학교 중에서 협의회에 가입된 협의체이다. 동북부협의회는 질적, 양적으로
전국협의회에서 가장 앞서가는 협의회로서 이 지역 한국학교의 발전을 위한 많은 행사들을 실
시하는데 그 일을 관장하는 일이 가장 큰 업무이다. 초대 허병렬 선생님을 비롯하여 기라성같
은 회장님들이 길을 잘 닦아 놓으셨고 큰 업적들을 이룩해 놓으셨다.
나는 누구든지 한국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하고 나선 모든 선생님들을 한없이 사
랑하고 존경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고 대부분 주중에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토요일까지 반납하고 우리 모국어와 한국문화 역사를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친다. 완전히 자원
봉사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수가 보수를 받는 수 보다 많고, 또 사례비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사례비라고 할 수도 없는 댓가를 받고 있기에 그 분들을 더욱 존경한다.
더욱이 협의회의 회장, 부회장을 비롯한 9명의 임원들은 모두 다 한국학교를 경영하거나 책임을 맡고있는 분들로서 주말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 또 덤으로 협의회의 많은 일을 완수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분들이기에 이 분들이야말로 감히 한국학교를 위해서 태어난 분들이라고 할 만하다.

이들은 회장을 중심으로 팀웍이 잘 짜여 있었고 한마음으로 뭉쳐 있었다. 행사 임무분담 회의 때는 플러싱과 뉴저지를 번갈아가며 허드슨강을 넘나들며 모임을 갖는다.뉴저지 남쪽에서 사는 어느 분은 플러싱에서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보통 12시가 넘는데, 한번은 어느 한영, 영한 번역대회 때 채점이 끝나고 수상자를 결정하는데 11시에 끝나 집에 도착하니 2시가 넘었다고 한다. 차로 달리는 시간만도 왕복 5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한번도 불평 없이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모임에 임하며 책임을 완수하는 선생님을 볼 때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든 임원들은 이렇게 남다른 사명감으로 책임을 완수하여 행사들을 이끌어 나간다.행사가 어렵고 힘들수록 그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을 때는 더 기뻤고 보람을 느꼈다. 그러니까 2년 임기동안 줄곧 힘들었지만 나는 늘 행복하였고 보람을 느꼈다. 다만 내가 얼마나 역할과 사명을 잘 감당했는지가 문제다.

인생길 이순(耳順)도 반을 넘은 나이에 접어들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여러가지 많은 역할과 직분을 맡고 살아오면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과 떠남이 있었다. 남편도 떠나보냈고 내가 살던 고향 형제자매 일가 친척, 친지 그리고 내 나라를 떠나 이국에서 새 둥지를 틀었고, 이 땅에서 새 사명과 역할을 담당하고 살았다.2년 전에는 뉴저지한국학교를 떠났고 이제 한국학교협의회도 떠나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서 그 분 앞에 설 때까지 수많은 떠남이 있어 이 헤어짐도 떠나는 연습에 불과할진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이 떠나는 연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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