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학군감 정학

2005-11-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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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학부모 코디네이터)

몇주 전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다른 학교 학부모 코디네이터로부터 자기 학교 한인학부모
에게 중요한 일이므로 한국어로 전화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용은 5학년 남학생이 학군
감 정학을 받게 됐으니 이 사실을 부모에게 통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은 그 학생이 수업시
간 중 폭력적인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9.11사태 이후 엄격해진 보안 규율에 의하여 학생들 안전에 신경 날카로워진 학교측에서 그 사
실을 상부에 보고하게 되어 사건이 확대되었다. 그 학생의 어머니에게 사실을 알린 후 그 학생
과 부모와 동행하여 학군감 청문회에 참석하기를 자청하고 나섰다.
그 이유는 첫째는 학교 처벌로는 가장 강력한 학군감 청문회는 듣기만 했지 한번도 참석한 경
험이 없으므로 좋은 공부가 될 거라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두번째는 그 학생의 부모와 전화로
대화하면서 흑인이 주를 이루는 학교에서 한국아이로 혼자 친구도 없이 마음에 많은 상처와 괴
롭힘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뭔가 도와야겠다고 생각해서였다.

청문회에 가니 청문관, 녹음기로 기록하는 여자 한 사람, 학교측에서 상담 여교사, 정학받을 학생과 어머니와 나를 비롯해 여섯 사람이 배석했고 모든 대화는 녹음기로 녹음되었다.각자의 성명과 학생과의 관계를 물어보고 또 자신들이 자기 소개를 직접 한 후 청문회의 진행방식에 대해 설명이 있었다. 세 가지의 선택권을 주는데 첫째는 무조건 학군감 정학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과 둘째, 학부모가 청문회 연기신청을 해서 증인이나 증거물을 제시하고 정학 사실이 정당하지 않음을 반증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고 셋째는 정학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 학생 어머니가 연기 신청을 해서 일주일 후에 다시 청문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동안 부모는 그 학생이 화가 날 때나 분노를 삭이지 못할 때 그림으로 해소하라고 그동안 지도받은 미술교사와 방과후학교 교사로부터 받은 편지들을 원본과 영어로 번역한 것을 지참하고 다시 청문
회에 참석했다. 그 날은 학교측에서 상담교사와 담임교사 2명이 참석했다.
청문관의 질문이 자세하게 모든 상황을 반복하여 교사들에게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그림 그린 종이도 교사가 그 학생에게 줬으며 그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그 시간에는 교사 본인과 보조교사 2명, 그리고 10명의 학생이 교실에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잠시 후, 학부모가 정학신청한 교사와 담임교사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왔다.학부모는 자기 아들이 집에서 이런 그림을 그리면 하는 도중에도 좋은 그림을 그리라고 지도하는데 어떻게 4장의 그림을 그릴 때까지 방치하다가 아이가 점심시간에 나간 후 그 그림을 가지고 상담교사에게 갔느냐고 질문했다. 모든 청문회를 자세하게 통역하고 있던 나는 기회는 이 때다 하고 그 어머니 한 말에다 더 강력하게 학교와 교사의 일 처리에 부적당함을 불같이 토해냈다.시장선거 후보 토론회 동시통역을 통해, 그리고 미국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번복하려 할 때는 얼만큼 신랄하게 상대 의견이 옳지않음을 토론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나는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물 멧돌로 공격하듯이 열정적으로 통역했다. 결과는 이틀 후에 알려준다고 했다.

달걀로 바위 깨는 거라고 다른 사람들이 말했다며 교육감 정학을 번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속이라도 너무 시원하다는 부모와 함께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퇴근 후 바쁘게 구역예배 준비를 하며 청소하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어제 청문회를 진행하던 청문관 미스 데이비스였다. 정학이 취소되었다고 알려준다. 그 날이 마치 금요일이라 난 ‘해브 나이스 위캔’ ‘탱큐’ ‘갓 브레스유’를 연발하며 흥분이 되어서 전화를 끊고 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리고 나는 골을 넣은 안정환은 아니지만 손을 번쩍 들고 무릎 꿇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다.
부족하지만 많은 부모를 돕고 특히 말이 안 통하는 한국 부모를 도와 약자의 편에 서서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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