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통치권력이 법을 압도한다면

2005-11-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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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전 재미한인학교협의회 회장)

미국에 살고 있는 동포 2세들은 전혀 자기의 뜻에 관계없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왔거나 혹은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어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미국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동포사회 전체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동포 1세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에 오게 된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다.

조국을 떠나 살고 있는 처지에 한국정치에 억지로라도 무관심하려고 애쓰면서 정치인들이 나라를 잘 이끌어주기를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들려오는 좋은 소식에 박수치고 안타까운 사건에 분통을 터뜨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문(文)을 중시해온 전통 탓에 교수가 우대를 받아왔고 정권마다 꽤 많은 교수들을 정치인으로 모셔 왔다. 그래서인지 마치 한국의 교수는 치외법권을 누려 대학 강단에서 무슨 의견을 늘어
놓아도 ‘학문의 자유’라는 방패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아무리 한국정부가 남북한 국민의 공통된 소원인 통일을 위해 북한의 많은 것을 포용하고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인 국가보안법이 아직은 존재하고 있
기 때문에(이미 관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지만) 억지논리를 펴고 있는 강정구 교수의 주장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국민을 설득하여 통일에 장애가 되는 제도나 법률을 바꾸어가야 한다. 정치인이나 정당의 이해관계 때문에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망각하거나 통치권자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통치권력이 법을 압도한다면 어떻게 군사독재에 돌을 던질 수 있겠으며 또 다른 ‘과거사 청산’에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그의 의견은 사회학자로서 학계에서 인정받은 학문적 이론도 아니고 단지 현 정권의 두둑한 후
원을 배경삼아 학생들의 인기에 관심을 두고 뭇사람들의 시선에 쾌감을 느끼며 한국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자’느니 ‘미국이 6.25전쟁의 주범이며 주적’이라는 주장은 학자, 아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양심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북한정권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6.25가 북침이라고 주장해 온 북한정권에게 ‘6.25를 통일전쟁’이라고 말하면 꾸지람을 들을지, 칭찬을 받을지... 미국은 학문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면서도 공산주의는 철저히 제약하고 있다.불과 60년 전에 독립하여 인류역사에 가장 잔인한 동족간의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 받으면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며 어렵게 지켜온 민주주의를 일부 좌경 교수들과 어린 학생들에게 반미 등 이념교육에 치중하고 있는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들에게 탈취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

같은 맥락으로 맥아더장군 동상 철거 주장도 학문의 자유라는 틀 안에 있지 않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4,000여명의 진보단체 회원들이 동상 철거와 반미 집회를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현 정권이 방조하는 느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오히려 성숙한 민주주의는 법을 어기는 모든 사람들(내 편, 네 편 가리지 말고)을 교도하기 위해 격리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전쟁 참여를 거부한 프랑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들이 만들어준 자유의 여신상을 철거하자고 하지 않았다. 세계 제 2차대전을 통해 프랑스를 해방시켜 준 미국에게 배은망덕한 괘씸함을 Freedom Fry(French Fry) 등으로 조롱하면서 넘겼다. 역사는 역사로 인정하고 귀중하게 여길 줄 아는 상식이 진보와 혁신을 부르짖는 자들에게 스며있을 때 비로소 국민들의 따뜻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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