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2005-11-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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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주위에서 보면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을 토해내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눈만 뜨면 누군가를 괴롭히고 상처를 주고 또 어떻게 하면 망하게 하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람을 보면 참 안됐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좋은 세상 고운 말만 하고 살아도 다 못사는데 왜 저러고 살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말이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말은 나온다고 다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보면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다. 또 한국에는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다. 이는 바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사람의 혀란 한번 움직일 때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할만큼 걷잡을 수 없이 멀리 나간다.


마치 조그만 열쇠 하나로 그 엄청난 무게의 배나 전동차,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어쩌다 한번 뱉은 말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가게를 망하게도 흥하게도 하는 것이다. 독재자들의 통치수법도 모두 이 말 한마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이 부하에게 점령하라 하면 점령했고, 침략하라 하면 침략했고, 철수하라 하면 철수했다. 또 죽이라 하면 죽였고 살리라 하면 살린 것이 바로 말이었다. 이 걸 보면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도 상당부분 바로 말로서 비롯됐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툭하면 “대통령 못해 먹겠다” “내가 어떻게 대통령이 된 줄 아느냐” “내년 봄에 진로를 결정하겠다” 등등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될 말을 서슴없이 내뱉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정국을 혼란으로 몰고 가고 있다. 때문에 부정적인 말, 살인적인 말, 욕설이 담긴 말, 책임못질 말을 함부로 하게 되면 자기 자신이 망하고 가정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는 물론, 가족이나 친척간에, 친구간에, 그리고 이웃이나 국가간의 모든 문제와 분쟁도 말이 씨가 된 경우가 부지기수다.

말은 곧 하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표시이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좋은 말 몇 가지만 잘하면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 수 있다. 이 땅에서 비록 영어를 유창하게 못할지라도 ‘Thank you’ ‘I am sorry’ ‘Beautiful’ ‘It’s my fault’ 등만 제 때 하면 다른 민족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한인들은 이런 말에 너무 인색하다. 그래서 대체로 표정들이 굳어있고 노여움과 아픔, 괴로움과 서운함이 배어있다. “내가 밥 몇 번 사줬는데 고맙다는 말도 없고...” “무엇을 해줬는데 고맙다는 서신 하나 없고...” 하면서 이런 저런 불평과 불만들이 가득하다. 때문에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말 한마디 잘 못하는 바람에 “다음부터는 없어”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말은 조심해야 되지만 또 가식적으로 해서도 안 된다. 즉 허위, 과장돼서도 안되고 진실되고 사실대로 해야 한다. 하다못해 재판할 때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공정해야 하는 것처럼 항상 정확하고 정직하게 해야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다. 말이란 아무리 없어도 온유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하게 되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기나 마찬가지다.

요즈음 한인사회에는 경기가 너무 어렵다 보니 “죽겠다” “죽겠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말에 편승하게 되면 실제로 다같이 죽는 꼴을 낳게 된다. 어려울 때일수록 희망을 주고 힘이 되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야 너도 되고 나도 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가정에서
도 좋은 말만 골라 해야 발전적으로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가족간에 독설이 오가면 깨어지게 되어 있다. 이혼이나 별거, 심지어는 살인도 알고 보면 다 말 한마디에 의해 빚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면서 어디서건 덕스러운 말만 해야 되겠다. 내가 뱉은 말 한 마디가 혹여 남을 괴롭게 만들고 남을 절망에 빠뜨리고 주위를 어지럽히는 것은 아닌지.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요즘 유독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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