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평범한 곳에 진리가 있다

2005-11-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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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평범한 곳에 진리가 있다. 이 말은 평상심이 가장 도와 가까운 것의 하나라고 말할 때 쓰는 예로 사용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세상 가운데 살아간다. 세상이란 우리가 사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 포함 속에는
우주도 있다. 별들의 세계도 있다. 태양도 있다. 달도 있다. 지구도 있다. 지구안의 모든 생물과 모든 동물과 모든 생명들이 다 포함된다. 이와 같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도 세상에 포함되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세상엔 포함된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정신적인 세계를 말한다. 감히 만지지도, 볼 수도 없는 정신의 세계가 있다. 정신적인 세계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영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고 생각의 세계 혹은 마음의 세계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아무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고 가
늠할 수는 없어도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그런 세상을 말한다. 또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보이는 세계도 이 세상엔 포함된다. 그 세상은 미생물들의 세계이다. 그 세상은 미세한 세포까지도 포함한다. 그 세계는 우리 몸 안에 수 억, 수십억, 수천억의 세포군을 형성하며 또 다른 세계와 우리의 세계를 연결시켜 준다. 그들이 우리 몸속에 서식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몸은 몸의 구실을 할 수 없다.


이같이 우리의 몸이란 수십, 수백, 수천억의 세포들이 집합돼 연결고리를 만들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사람을 사람으로 살게 하며 세상 안에 존재하게 한다.그럼, 평범은 어떤 것을 말하나. 눈으로 볼 수 없는 우주와 정신 그리고 미시의 세계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평의 세계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생, 혹은 어떠한 삶을 말하는가. 그 평범은 인간으로서의 평범한 삶을 뜻한다. 평범을 다른 말로 풀이한다면 특별한 것이 아닌 보통을 말한다. 보통 혹은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사는 그 모습 속에서 그저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는 그대로의 ‘그냥’의 삶을 말한다.

그럼 ‘그냥’의 삶이란 또 무엇인가. 주어진 대로, 맡겨진 대로, 있는 대로, 복잡하고도 엄청나게 크며 미묘한 세상이지만 그냥 그대로 하루하루 욕심 없이 살아가는 생과 삶을 평범한 삶 혹은 보통의 삶 내지는 ‘그냥’의 생이라면 맞지 않을까. 이 말은, 욕심 없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욕심이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원인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욕심이란 것이 어떨 때에는 아주 큰 지렛대의 역할을 하여 삶을 보통에서 특별로 인도하는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삶은 특별에서 다시 보통으로 떨어지지 못한 채 특별한 삶의 마
감을 서둘러 가져오게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태어날 때는 보통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삶의 과정을 통해 특별한 사람으로 변화
된 후 죽음을 맞이할 때는 아주 특별한 존재로 부각되어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 크게 획을 그어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의 생애를 예로 들 수 있다.

장주가 <장자>를 통해 말하는 도는, 배설물에도 도가 존재한다고 한다. 배설물에서부터 하늘까지, 도는 어느 한 곳도 없는 곳이 없다고 한다. 이 도와 가장 가까운 것 중의 하나가 평상심이라고도 한다. 평상심이란 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말하지 않을까. ‘그냥’ 흘러가는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 평상심은 아닐까. 욕심 없는 마음을 또한 평상심이라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평범한 사람의 가슴에 내려앉을 때 그 사람은 욕심 부리지 않게 되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은 또 아닐까.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특별한 것들도 크게 작용 하지만, 이 세상을 세상답게 만들어가는 것은 평범 속에서 평상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통의 삶 속에서 나오는 힘으로 이 세상은 세상으로 지탱되며 유지되고 움직여지는 것은 아닐까. 가을이다. 낙엽이 뒹군다. 뒹구는 낙엽을 무심하게 밟고 지나는 발길들. 떨어져 흐트러지는 낙엽 속에 진리가 담겨 있다면 그 진리는 보통의 진리일 게다. 언젠가는 우리도 낙엽처럼 떨어져 흐트러진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 말이다. 우리는 모두 세상 가운데 살아간다. 세상 밖이란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안에 살면서 세상 밖을 살아가듯 살아갈 수는 없을까. 무욕으로, 보통으로, 평범한 곳에 진리가 있음을 알고 ‘그냥’ 살아간다면 그렇게도 살아갈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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