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싯돌의 위력

2005-11-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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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불을 일으키는 도구의 발달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처음에는 나무와 나무를 빠른 속도로 맞비비면서 열을 내어 불티를 얻고, 마른 풀에 불을 일으켰다. 다음에는 돌과 쇠를 부딪치는 방법, 즉 부싯돌을 이용하여 불꽃을 튀기고 불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오늘날은 성냥과 라이터를
이용하여 손쉽게 불을 일으켜 사용한다. 사람의 지혜가 발달함에 따라 여러 가지 도구를 써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찾아내었다고.인류가 쉼없이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찾은 이유는 불을 생활에 이용하기 위함이었고, 불의 이용과 발명은 인류 문화를 탄생시키는 근원이 되었다. 불을 비교적 쉽게 얻게 되면서 때때로 이 불로 인한 화재같은 피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불과 인류의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불길에는 잘 보이는 것과, 활활 타는 불길이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서 끈질기게 이어지다가 때가 되면 폭팔하는 불길이 있다. 얼마 전에 타계한 로사 팍스 여사는 바로 이런 불길을 일으킨 부싯돌이었다. 필자는 그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체험을 한 기간이
있었기에 이를 귀하게 간직한다.필자는 50년대 말, 60년대 초, 내쉬빌 테네시주에 있는 조지 피바디 사범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자연 환경이 더없이 아름답고 인정이 많은 남부인과의 생활에 만족하였지만, 한 가지 괴롭히는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대학 내에 흑인학생은 한 명도 없었고, 흑인들은 막일을 하는 일꾼들 뿐이었다. 주말에 어쩌다 시내에 들어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좌석 문제가 골칫거리였다.


앞편에는 백인이 앉고 뒷편에는 흑인이 앉아있는 버스에서 어디에 앉을 것인가. 여행시에는 흑·백 따로 마련된 버스 대합실을 보았다. 이 때는 마음 편히 대합실 밖에서 버스를 기다린 기억이 있다.당시의 내쉬빌은 흑백문제로 어수선하였다. 다운타운에서는 흑인들과 식당주인들이 무언의 싸
움이 계속되었다. 백인만 들어갈 수 있는 식당에 흑인들이 들어가서 자리를 점령한다. 식당주인이 이를 경찰에 보고한다. 경찰이 출동하여서 그들을 밖으로 쫓아낸다. 그들은 말없이 그 자리를 뜨고, 경찰은 되돌아간다. 경찰이 보이지 않으면 흑인들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고, 주인은
경찰을 부르고… 이렇게 하는 영업 방해가 되풀이되었다.

1955년 흑인 여성인 로사 팍스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 못하겠다고 버틴 후 4년째가 되어도 식지 않는 저항정신, 말하자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을 체험한 것이다.로사 팍스 여사의 정신은 381일 계속된 충격적인 흑인들의 버스 보이콧 운동으로 이어지다가, 당시 몽고메리 타운의 흑인 교회의 목회자였던 마틴 루터 킹을 투쟁의 지도자로 선택하였다.
킹 목사를 중심으로 한 민권운동의 불길이 타올라서 드디어 1965년 민권법안이 통과되었다. 현재 소수민족들이 받고 있는 동등한 참정권 행사는 ‘55년에 로사 팍스 여사가 부싯돌에 불을 당긴 결과이다.누가 부싯돌이 될 수 있는가. 우선 부싯돌이 되려면 돌 자체가 단단해야 한다. 돌이 단단하다는 것은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견고한 자기 주장을 가졌다는 뜻이다. 세상의 불의를 타개하려는 굳은 의지를 말한다. 둘째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졌어도 용기가 없으면 불을 붙이기 전에 꺼지고 만다. 셋째는 꾸준히 굳은 의지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 번 부싯돌에 불길이 오르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로사 팍스 여사의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은 천안문의 중국 청년에게 불씨를 넘겼고, 최근에는 프랑스 각 지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아프리카 아랍계 이민자 2세 청년들에게 옮겨 붙고 있다. 모두가
희망하는 것은 ‘자유’라는 공통분모이며, 그녀의 정신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로사 팍스 여사는 일생을 가난하게 살면서 흑인 민권운동을 하였지만, 그녀가 받은 보상은 백인만이 차지하던 버스 앞자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유해는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연방 의사당 중앙홀에 안치되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 헌화하고 조의를 표했다. 이는 로사 팍스 여사의 부싯돌 역할에 대한 당연한 감사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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