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박정희와 노무현

2005-11-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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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고등학교」 교장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학」의 총장격이다” 국정홍보처라는 한국정부 부처의 한 간부 공무원의 인터넷에 이같은 내용의 칼럼을 올려 물의를 빚었다. 그가 이런 내용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박정희 모델이 고등학교
의 대학입시 공부라면 노무현 페러다임은 대학전공 공부”라는 것이다. 고등학교의 입시공부는 획일적 주입식 학습이지만 대학전공 공부는 다양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 그의 비교이다.

이 비교는 박정희와 노무현이란 두 사람의 스타일을 비교한 것이지만 박정희를 깎아 내리고 노무현을 치켜 세우는 내용임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현정부가 들어선 후 꾸준히 추진해 온 이른바 박정희 때리기 또는 박정희 죽이기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박정희 때리기는 줄기차게 진행됐다. 과거사 규명이란 이름으로 박정희의 친일행적을 들춰내 친일파로 몰았고 의문사 규정이란 차원에서 박정희 시대의 독재정치를 부각시켰다. 마치 박정희를 죽여야만 노무현이 사는 것같은 인상까지 풍기게 했다.


노무현 정부가 왜 이렇게 박정희의 망령에 쫓기고 있는지는 이해할 수도 있다. 과거 박정희 시대의 피해자들이나 박정희 비판자들이 현정부에서 실권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피해를 당한 기억과 독재를 거부했던 소신으로 박정희를 미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
민들은 박정희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의 딸인 박근혜가 자기네의 권력을 위협하는 정치적 반대자로 등장했으니 박정희를 죽여야 하는 이유가 더욱 절박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정희를 깎아 내리고 노무현을 치켜 세우는 비교는 가당치가 않다. 획일적 주입식과 다양성 자율성으로 두 사람을 비교한다면 박정희 지지자들은 박정희는 질서와 규율을 존중한 모범학생이고 노무현을 난장판을 치는 불량학생이라고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왕에 비교가 나왔으니 두 사람을 다른 면에서 비교해 보기로 하자. 박정희와 노무현은 서로 닮은 점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른 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다.우선 어려운 환경의 출신이라는 점과 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하여 인생에서 크게 성공을 이루었다는 점에 매우 비슷하다. 그리고 출세에 대한 열망이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했던
사람들이기에 정치권력을 추구하여 최고 정상의 위치까지 올라간 점도 비슷하다.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또 있다. 어려웠던 환경 탓인지 모르지만 현실에 대한 반감이 컸고 그것이 개혁성향으로 발전하여 힘을 가진 후 세상을 많이 변화시켰다. 그 뿐 아니라 독재적 성격도 비슷하다. 이는 자수성가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특성으로 자신감이 지나쳐 독선과 아집
을 형성, 독재적 경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흔히 박정희는 독재자이고 노무현은 민주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박정희는 법과 제도로 독재를 했고 노무현은 법을 무시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독재를 하고 있다. 대연정제안 처럼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선 일이나 검찰지휘권 발동처럼 국보법을 유야무야로 만든 일등이 그런 것이다.그런데 이 두 사람은 아주 다른 점도 있다. 두 사람이 모두 소수파로서 정권을 잡았으나 박정희는 많은 정치세력을 포용하여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썼다. 그러나 노무현은 코드인사라는 말처럼 자기 편을 다지면서 이질적인 사람들을 배제하는 방법을 썼다. 박정희는 과묵한 성격으로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워가면서 정치를 한 성실형인데 비해 노무현은 말하고 토론하기를 좋아하여 전문가들에게도 절대로 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다. 박정희가 실천적인 사람이라면 노무현은 이론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이순신 숭배자이다. 한국인 치고 어느 누구도 이순신을 숭배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두 사람은 특히 이순신 숭배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순신은 주위에서 누가 무어라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구국 일념으로 살아온 위인이다. 그런데 박정희는 이 구국일념을 배웠고 노무현은 누가 뭐래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배운 것 같다. 그러니 노무현을 박정희에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TV에 상품 선전을 할 때 꼭 일류회사 제품을 갖다놓고 비교하는데 이런 선전은 결국 일류회사 제품만 더 선전해 준다고 한다. 박정희를 깎아 내리는 비교는 결국 박정희 컴플렉스의 발로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만 할 뿐이다.더우기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과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을 비교한다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정말로 두 사람을 비교할려면 두 사람이 모두 무덤에 묻힌 후 역사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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