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역사 조작은 학문의 자유가 아닌 범죄

2005-11-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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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목사/칼럼니스트)

요즈음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강정구 교수의 주장은 ‘6.25한국전쟁은 통일을 위한 내란이었는데 미국의 개입으로 좌절됐다’는 것이다. 강교수 행적이 처음으로 문제된 것은 2001년에 8.15방북단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과업 이룩하자’라고 방명록에 서명한 사실이 알려진 때부터이다. 그 해 재판을 받고 풀려난 후 일관해서 극단적 통일논의와 진보적 정치활동에 앞장 서 왔다. 부시대통령의 김대중 대통령 방문 반대 시위대에도 맨 앞장에 서 있었고 민주노동당의 정책위원으로 급진 정치의 이론가로 나섰다.

올 7월에 강교수가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개입으로 통일전쟁이 좌절됐다’고 주장했고 그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맥아더동상 철거를 시도하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 직접적인 배후이기도 하다.강교수의 이번 주장은 그동안 북측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북한의 선제공격을 통해 남침한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목적을 ‘통일전쟁’으로 보고 그 형태를 ‘내란’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이데올로기 전쟁을 통일전쟁으로 보는 것은 남쪽이 똑같이 통일을 앞세우던 때이니까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내란’으로 정리하려는 것은 상당히 의도적인
것이다. 한반도의 ‘내란’에 미국과 UN이 부당한 개입을 해서 한반도의 통일이 좌절됐다는 의도적 주장으로 정치적으로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개시한 한국전쟁은 2차 대전을 마무리한 포츠담선언에 따른 명백한 국제조약 위반이며 UN안보리 국제법을 위반한 침략전쟁이 명백하다. 이로 인하여 최초로 UN군이 편성되었고, 16개국이 UN의 깃발 아래 참전한 전쟁이지 미국이 단독으로 개입한 전쟁이 아니라는 것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오히려 외세 개입 운운하면서도 중국 의용군 100만 대군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이 좌절된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이어야 하는 학자의 자세가 아니다.

강교수! ‘학문의 조작은 결코 학문의 자유가 아니다’ 역사학은 오늘날 단순한 고증학을 넘어서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다. 사회학으로서의 역사는 현대사회의 인과를 분석해서 미래를 제시하는 역할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과학으로서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 하나 하나에서 단서를 발견하고 분석하므로 역사를 학문적 세계로 정리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그런데 강교수는 비합리적인 태도로 역사에 대한 의도적 조작을 하고 있으며, 그것은 특별한 2차 목표를 갖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나간 과거를 단순히 재해석하는 것에서 나아가 특정한 미래의 사태를 미리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우리의 과거는 미래로부터 유래한다”는 명제처럼 역사가로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이끌어내는 예언자적 역할을 하고자 하는 시도인가? 이번 기회에 사회적인 논쟁을 고의로 불러 일으켜서 ‘다시금 발생하게 될 한국전쟁’을 내란으로 미리 규정하려는 의도인가? 그리고 그 역시 ‘내란’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미리 못박으려는 사전 포석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역사적으로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통일전쟁이니 내란이니 부당 개입이니 때아니게 운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명백히 말해서 역사학자로서 강교수는 지나간 역사를 탐구하는 입장이 아니라 혁명가로서 미래를 선취하고자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새 시대의 과제인 평화통일을 논의하는 것과 적화통일을 지지하는 것은 명백히 구별되어야 한다. 강교수 자신은 진보적 사관을 가졌다고 자처할지 모르지만 당신 역시 냉전시대의 이분법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에 불과한 ‘퇴물’이라는 것이다. 오늘과 미래를 위한 ‘올바른 진보’는 평화통일이지 냉전시대의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한 편을 거들어서는 안되며, 또 다른 한국전쟁이 유발되서는 더욱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교
수의 일련의 행동은 사상범-생각과 양심의 자유-을 넘어서서 ‘의도적으로 학문을 조작한 비학자’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학교에서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보며 가치관이 혼란해진 한 시대를 상징하는 ‘기형화된 지식인’의 불행한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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