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좌대강화 규정’이 주는 교훈

2005-11-02 (수)
크게 작게
여주영(논설위원)

한인사회 행사에 참석하다 보면 눈에 자주 띄는 정치인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보던 인물은
외모도 반듯하고 늘 예의 바르고 단정해 보이던 중국계 시의원 존 리우다. 우리는 그를 보고
참으로 대단한 정치인으로 평을 하곤 했다. ‘어쩌면 저렇게 열심히 활동할 수 있을까’ 하면
서 모두들 그를 칭찬하고 그의 움직임을 부러워했다. 그런 존 리우 시의원이 요즘 우리 한인들
과 불편한 관계에 있다. 한인사회 젖줄인 청과, 델리 업소들의 좌대에 관한 규제법안을 그가 시
의회에 상정, 한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안건에 대해 관련단체가 모두 단결, 강력 항의하자 그는 이 법안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구두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언제고 다시 이 법안이 상정될 수 있는 여지를 남
겨놓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철회 발언은 무엇인가. 한인들은 그 동안 믿고 있던 리우 시의원에
게서 톡톡히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그런데도 한인들은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듯 하
다.
상대는 우리와 친숙한 사이였던 한 중국인이 아니고 중앙 정치 무대 진출을 꿈꾸는 야심 있는
중국계 정치인이다. 나는 이번 결과를 보면서 리우 시의원을 놓고 한 개인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우리가 알던 대로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상당히 친밀감 있고 괜찮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시의원이 되고 나서부터 정치적 특성상 사람이 변한 것일 것이다. 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런 지도 모른다. 정치에서 출세라는 것은 반드시 적을 만들어야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시의원이 되기 전과 후의 리우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정치
하는 사람을 믿는다, 안 믿는다 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정치란 바를 정(正)자 변을 가진 정사 정(政)자를 쓰지만 달리 생각하면 정(情)이 가는 대로 변화하게 되어 있다. 리우 의원은 바로 이 정치 판에 들어가 새로운 정치철학을 배우고 많은 실습을 통해서 그 동안 눈을 떴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바라볼 때 ‘좋다’ ‘나쁘다’ ‘믿을 수 있다’ ‘없다’가 아니라 정치인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조직 하나를 만들어도 기분이 좀 나쁘다 싶으면 서로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하면서 마치 정이나 꽤 있는 민족처럼 정(情)에 의해 모든 것을 토론하고 의논하고 결정하곤 한다. 이것은 이제 고쳐야 할 우리의 정치문화다. 미국인들처럼 이슈와 정책을 바탕으로 투표로서 결정짓는 선거문화를 배워야 한다.


리우 의원은 지금 미국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배경으로 새로운 정책을 배우며 가는 과정에 있다. 그는이제 한 마이너리티 민족의 정치가로 뜨기도 해야겠고 설득력 있는 의원으로도 주목받고 싶을 것이다. 그러자니 가만 앉아서 될 일인가. 이름을 내자면 반드시 적을 두어야 될 터인데 그 것도 힘있는 사람이나 기업 같은 곳을 건드려야만 출세의 길임을 리우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적으로 삼을 것인가. 후원자가 되는 중국계는 건드릴 수 없을 테고, 그렇다고 막강한 백인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흑인을 건드리자니 골치 아플 것이고 만만한 것이 한국인이라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한인들은 정책과 이슈를 가지고 사회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정에 겨워 사는 민족이기 때문에 저희끼리 모였다가 한편에서 기분 나쁘면 저희끼리 싸우면서 살아나가는 민족이라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다민족 사회에선 이슈만 가지고 운운하지 정(情)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아무리 떠들어야 통용이 되지 않는다. 만인이 인식해 줄 수 있는 공통분모 가지고 덤벼야 그것이 수용될 수 있다. 리우가 한인사회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그래 내가 철회 할께” 말로만 하는 것은 오로지 한인들의 입맛에 맞게 한 정에 겨운 소리다. 때문에 막상 시의회에 가서 보면 그 안건이 그냥 있는 것이다. 이를 놓고 우리는 ‘분하다’ 펄펄 뛰지만 리우는 그게 아니다. ‘너희들이 정에 겨운 얘기를 원하니까 나도 그에 만족하는 얘기만 해준 거다’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런데도 한인들은 정에 겨워서 기분이 나쁘다고 금방 싸움이 되는 그런 한인특유의 정을 가지고 다민족 사회에서 계속 살아갈 것인가. 이번 기회 우리는 이 정(情)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톡톡히 배우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