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한인들의 재벌관

2005-11-0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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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차장)

한인들은 대체로 한국의 대기업에 관대하다. 어떤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그동안 한국 대기업의 제품들이 미국에서 한국의 국력을 상징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제품들이 미국에서 성공을 거둘 때마다 한인들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을 경험했다. 또 미국에 살면서 한인들에게 ‘머니 머니해도 돈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이 주입된 것도 사실이다. 돈을 많이 벌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는 단순 사고도 생겼다.

한국 최대 기업인 S 그룹에 대한 한인들의 생각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해외에서, 미국내에서도 인정받는 그 ‘자랑스러운’ 대기업을 왜 한국에서는 못잡아 먹어 안달이냐는 식이다. 정권 탓까지 해가며 침을 튀기는 사람도 있다.하지만 역사적으로 이어온 정권과 재벌의 문제에 대해서가 아니라 최근 ‘금융 산업구조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좀 지적해야 할 것 같다.금산법은 대기업 집단의 지배 구조에 대한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세부 사항에 오류가 있다면
수정하면 되는 일이지만 문제는 그 논의 자체를 ‘반재벌’로 몰아가는 사고 방식이다.


얼마전에는 A 그룹이 전환사채 편법 증여를 했다는 유죄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간단히 얘기하면 이 그룹의 여러 회사들이 있는데(편의상 가나다‘로 하자), 이중 비상장 회사인 ‘가‘ 회사의 주식을 매수한 뒤 전환사채를 통해 엄청나게 뻥튀기를 했다. 그 과정에서 주당 1만9,000원짜리 주식을 산 뒤 몇 달 후 주당 30만원에 팔기도 했다. 이렇게 불린 돈을 다시 ‘나‘ 회사의 주식을 사는데 전부 사용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쉽게 말해 ‘가’ 기업의 최대 주주는 ‘나’ 기업이고, ‘나’ 기업의 최대 주주는 ‘다’ 기업이고, 다시 ‘다’ 기업의 최대 주주는 ‘가’ 기업.. 이런 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불린 돈으로 A 그룹의 후계자는 전체 그룹의 지배구조에서 가장 위에 있
는 ‘가’ 기업의 최대 주주가 됨으로써 전체 그룹의 총 경영권을 가지게 됐다는 스토리다. 현행법상으로는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이같은 지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을 고치자는 것이다.
“재벌의 기업 경영이 법망을 교묘히 피해 편법을 가장한 합법적인 세습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문제”, “지분 비율이 낮다고 지배주주가 편법을 동원해 지분을 자손에게 양도하고, 소액 주주들로부터 합법을 가장한 위법의 형태로 위임을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얼마전 뉴욕에 있는 한국 기업 관련 단체의 장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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