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수렁에 빠진 이라크전쟁

2005-10-28 (금)
크게 작게
이기영(주필)

이라크전쟁이 시작된 지 2년 반이 지난 현재 미군 전사자가 2,000명을 넘어서자 미국내에서 반전 여론이 거세게 일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반전단체들은 전사자 2,000명을 계기로 추모행사를 벌이고 반전시위를 확산할 기세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민주당은 이라크 철군을 주장하는 정치공세를 가열시키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이 잘못됐다”가 55%, “이라크에서 철군해야 한다”가 59%로 이라크 전쟁은 이제 미국인들에게 인기 없는 전쟁이 되었다.

이라크 전쟁의 문제는 완전한 승리의 전망이 없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데 있다. 연일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미군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으나 테러 공격을 완전히 막아낼 수도 없고 저항세력을 모두 소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미군 전사자만 늘어나고 전비만 들어가고 국내의 테러 위험만 높아지고 반전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라크전쟁이 제 2의 베트남 전쟁이 될 것으로 우려했던 일이 점점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부시대통령은 전세계에 자유를 확산하고 평화를 다지기 위해서는 미국인이 더 희생되더라도 이라크에서 철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망이 불투명하고 희생만 늘고 있는 이라크 전쟁으로 더 이상 미국민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난 여름 반전 엄마인 신디 시핸이 텍사스에 있는 부시대통령의 목장에서 단독 시위를 할 때만 해도 미국인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전사자가 계속 늘고 있는데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이제는 무언가 해야 한다고 미국인들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지금 미국은 밑도 끝도 없는 이라크 전쟁에 돈을 퍼부어야 할 처지가 아니다. 정부는 각종 경제지표를 내세워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일반 서민의 체감경기는 말이 아닐 정도로 악화 일로에 있다. 우리 한인들의 주종업종인 소매경기를 보면 이런 현상을 실감한다. 이민생활 수십년에 지금처럼 소기업이 어려웠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 뿐 아니다.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미국 본토의 테러 위험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기존의 알카에다 조직 뿐 아니라 이라크 저항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테러집단이 미국의 철군을 달성하기 위해 본토에서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들은 이미 스페인에서 테러 수단으로 정권을 교체하고 철군을 실현했다. 미국이 아무 성과 없이 희생만 큰 이라크 전선을 지키는 동안 국내에서는 테러 위험으로 인한 예산 낭비, 경제위축, 국민불안 등 온갖 비생산적인 희생을 치르고 있다.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장기적으로 개입한 전쟁은 한국전, 베트남전, 그리고 이번 이라크전 등 3차례이다. 이 3차례의 전쟁에 대한 국민 지지도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전은 참전 초기 80%의 지지를 받았으나 중공군의 개입 이후 급격히 하락하여 3년 가까이 되어 40%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휴전협정으로 마무리 됐다. 월남전은 처음 개입할 때 70% 정도의 지지로 시작하여 6년 정도 끌어오는 사이에 30% 선으로 떨어졌다. 이리하여 결국 철군하고 말았다. 이라크전의 경우 처음 개전할 때는 80% 정도의 지지율이었다. 그러나 2년 반이 지난 지금은 45% 정도가 되었다. 지지도의 변화로 볼 때 이라크전에서 철군할 때가 가까워 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이라크 전쟁은 애당초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테러세력을 배후 지원하는 혐의가 있는 이라크에서 그 위험을 제거한다는 테러와의 전쟁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 명분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이다. 이라크를 미국이 계속 떠맡아 희생만 감수할 것이 아니라 이라크의 치안과
장래 운명을 유엔과 같은 국제적 관리에 맡기고 미국은 빠져나오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군 시기를 놓치게 되면 국가적 부담이 가중되고 희생자의 증가와 함께 반전운동의 소용돌이 속에 심각한 국론 분열을 겪을 수도 있다. 결국 차기 대선에서 이라크 철군을 공약한 민주당의 집권으로 정권 교체가 되면 그 때야 철군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부질없이 희생자만 더 만들어낼 수는 없다. 「결자해지」란 말처럼 이 전쟁을 시작한 부시대통령이 끝맺음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