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따님-in-law

2005-10-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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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옥(MOMA 근무)

결혼한지 한 서너달 쯤 지났을 때 서양 며느리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Dear 어머니’로 시작된 짧은 편지였지만 난 아직도 그 속에 담긴 글을 읽을 때마다 만사 제쳐놓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 웃음은 며느리에 대한 나의 고마움이 잔뜩 들어있는 순수한 웃음이다.
“저 wanted to practice my 한글, so 저 am writing to you.”
혹시나 해서 보내준 초보 한글책을 받은 뒤 열심히 사전을 뒤져가며 시어머니한테 보낸 글의 첫 구절이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대부분은 어느 외국인이 한국말로 접근하면 우선 친근감을 더 느끼게 된다. 그 반대로 우리가 외국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나의 며느리랴! 며느리가 계속했다.“감사합니다. for the book. My 남편 helps me. 저 am lucky to have 둘 선생님.”글쎄다. 난 선생님 자격이 없다. 그저, 넌 한국집에 시집을 왔으니까 초보 지식이라도 가져야 되지 않겠느냐는 교만한 태도로 책 한권 덩그러니 보낸 것 뿐이지 차분히 함께 앉아 설명해준 적도 없었다.

몇년 전, 아주 똑똑한 스웨덴 청년이 2년간 우리 과(科)에 연수하려 온 적이 있었다. 여러나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도 있었는데 나 보고 한국말 선생이 되어 달라고 처음부터 졸라댔었다. 얼마 뒤 그 친구는 아침마다 나에게 인사말을 이렇게 했다. “당신은 나의 태양입니다” 어느 날,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인사말을 하는 것을 나에게 들키고 얼마나 혼이 났던지..


며느리가 계속 썼다.“저 hope you can 읽으시다 this. 내 handwriting is not very good.”아~ 글씨가 문제랴. 이렇게라도 노력하는 네가 얼마나 고마운데.“저 can’t write much because 저 am learning words like 무, 오리 and 사자, and 저 don’t have much to say about these things.”여기까지 쓰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만 나는 허리를 잡고 눈물이 나도록 웃어댔다.

외국어 배우는 것이 보통 문제인가. 우리도 고등학교 때 영어는 물론 불어, 그리고 쓸데없는 독일 문법 ‘데르데스뎀덴 디 데르 데르디-’를 외우느라 얼마나 골치를 앓았던가.나를 안심시키려고 며느리가 한 줄 또 썼다.
“Don’t worry! 저 will study this 오후.”난 걱정 안한다. 우리는 단어 몇 마디라도 함께 나누려는 그 노력이 더 소중하니까. 이것으로 끝이 났어도 난 며느리의 마음 자세가 고마웠다.한국말을 많이 배우고 싶어하는 그 스웨덴 친구가 내 어머니 부고 소식을 듣고 카드를 보내왔다.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 몇마디가 나를 웃게 했고 또한 나를 울게 했다.며느리가 편지의 끝을 맺었다.“저 think that’s enough 한글 for 하나 day.”정말 수고했다. 그리고 이토록 나를 즐겁게 해주는 네가 너무 고맙구나. 되도록 존대말을 써야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며느리가 마무리를 했다.Your 따님-in-law 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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