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처 받고 살아요”

2005-10-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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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뉴욕가정상담소 카운셀러)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상처들을 주고 받으며 산다. 그러나 이러한 상처들 중에는 그냥 넘겨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상처의 정도가 심하거나,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상처를 주고 받는다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이 상처안에 깃들여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상담소에서 일하다 보니 상처와 관련된 일을 많이 보게 되는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상처로 인
하여 자신이 많이 아픈 상태인데도 아픈것을 모르는 경우와, 알고 있더라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상담소를 찾아오지 못하는 경우이다.사람들이 아플 때 의사를 찾듯이 쉽게 상담소를 찾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상담받는 것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거기에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그릇된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아픔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아픔을 준 사건이나 감정을 객관화시키지 못하고 마치 그것이 ‘나’ 인것 처럼 받아들이거나, 상대방으로부터 주입된 것이나, 전이된 것을 믿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잘못해서 이런거야” “나는 더이상 가능성이 없어”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사건이나 감정은 ‘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건이나 감정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다루는지에 따라서 건강한 의사 소통이 될 수도, 상처나 학대또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상담을 받지 못하게 하는 그릇된 신념을 살펴보자.지속적으로 상처받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변할지도 모른다” “내가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신념들은 지속적인 학대 구조 속에서 발생되고 결국은 학대 구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참고 산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지속적인 학대와 폭력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종교인들은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학대를 받으면서도 이것을 인정하기보다는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인 우이는 용서하기 이전에 우선 자신이 상처받고 학대 받았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학대나 폭력 하면 엄청난 단어로 들리지만, 이것은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상처속에 깃들여 있고, 가까운 관계, 예를 들면 가정이나 친구, 일터에서 일어난다. 폭력은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좀 더 힘있는 사람에 의하여 조절되는 것을 말한다.그러면 어떻게 상처나 학대, 폭력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자신에게 가해진 상처, 학대, 폭력을 인정하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의 느낌, 생각, 판단,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을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상처, 학대, 폭력은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절히 잘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상담소에서 그룹을 이끌다 보면 “나 전달법(I statement)’등의 의사 소통 기술을 배우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본다.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화를 내거나 남을 못살게 군다면,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안에 있는 무의식의 그림자를 상대방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더 실제적으로 자신의 화나 공격적 성향, 질투심 등의 부정적 느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배우고 연습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자유롭게 사는 것 같다. 서로의 자유을 위하여,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사람들이 어우러져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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