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식사와 기도

2005-10-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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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석(뉴욕 그리스도의교회 목사)

사람이 만나면 “식사하셨나요?” “진지 드셨습니까?”라고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남이 식사를 하든 안 하든 하는 것이 중요한 인사였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인사법도 변하여 갔다. “많이 먹어라” “많이 들게” 하는 인사말을 거쳐 “무엇을 먹었느냐?” “어디서 먹었느냐?”
이제는 “누구랑 먹었느냐?”가 주된 인사이다.
사람이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무엇을 먹든 굶지 않고 먹는다는 것은 복이다. 요즘에는 너무 먹어서 문제이다.
사람에게 먹는 것을 가지고 치사하게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개도 먹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먹는 것을 철저하게 교육과 연결을 시켰다. 초등학교에 가서 처음 배운 동요가 ‘깊고 깊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산골짝에 다람쥐~ 무얼
먹고 사느냐?’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며는 코로 받지요’ 등 먹는 것이 부러운 노래인지 동물들을 사랑하고 염려가 되어 부른 것인지 우리는 곧잘 부르곤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위장병은 밥을 먹으면서 꾸지람도 함께 들어서라는 설도 있다. 군대에 가서는 밥 한 그릇 먹기 위해 애를 썼고 그 밥을 놓고 큰 소리로 “감사히 먹겠습니다”라고 외치고
먹었다. 누구에게 감사한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음식을 먹기 전에 기도하는 것은 믿는 자들의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날마다 끼니마다 해야 하는 기도이기에 때때로 형식적인 주문식 기도도 있긴 하다. 어떤 행사나 예식 때 목사님들이 초청되어 식사 기도를 한다. 기도가 끝난 다음 술잔이 오가는 것도 자주 본다. 뿐만 아니라 식당
이 별실에 있기 때문에 어떤 식사가 준비되었는지도 모른채 미리 기도해 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기도는 감사가 있어야 한다. 전쟁 때처럼 한 술이라도 더 먹어야 하는 절박함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식사 기도에 대해 식사가 기도를 할 때 우리는 언어로 표현하기 이전에 음식 앞에서 눈을 감고 먹을거리를 창조해 주시고, 사계절을 통하여 내 앞에 오기까지 수고한 손길들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음식은 자신만이 먹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먹는 행위는 또한 나눔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다. 한 솥에서 나온 같은 음식을 여럿이 나눔으로 말미암아 함께 하는 이들과 한 몸, 한 지체됨을 경험한다. 우리는 식사시간을 통해 서로의 공동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서로를 마주보며 식사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함께 하는 매우 진실한 교제의 시간이다.

식사의 마침은 음식을 다 먹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음식이 담겼던 그릇을 깨끗이 씻는 설거지까지 연결된다. 즉 설거지는 또한 단순히 그릇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 남은 음식을 깨끗하게 분리하고 보관하는 행위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음식을 가벼이 여기지 못하게 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음식 앞에서 드리는 기도는 언어로 드리는 식사 기도라면 설거지는 ‘몸으로 드리는 식사 기도’이다. 설거지는 자신의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음식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초대받은 자리에서 밥만 먹고 일어서려고 하지 말라. 회의나 예식이 식사시간을 포함할 때 우리는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여야 한다. 꼭 먹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남에게 먹기 위해서 때에 맞추어 나타난다는 사고는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먹었으면 간다는 사고도 버려야
한다. 적어도 기도해 주고, 기도한 만큼 삶이 나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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