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모의 마음 11월이 되면

2004-11-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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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1월이 되면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는 행사가 있다. ThanksgivingDay. 1년 동안 분주하게 지내다가 “어! 벌써 11월이 되었네”하는 순간 마음이 더 바빠진다. 세월의 빠름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나에게는 이번 추수감사절이 여느 때보다 더 의미가 깊다. 그 이유는 2년전 만해도 혼수로 병원을 들락날락하느라고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다시 살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만 할 뿐이다.
간경화증에서부터 오는 식도출혈로 혼수상태에 들어간 채 병원에 실려가 곧이어 수술을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머리가 늘 띠잉해서 말도 빨리 못하고 단어도 빨리 생각나지 않아 글도 제대로 쓰지 못했던 나에게 매달 빠지지 않고 ‘사모의 마음’에 글을 올릴 수 있게 되기까지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눈물나도록 감사한 분들이 떠오른다.
간이식수술 대상자로 대기자 명단에 올라간지도 1년이 넘어간다. 간이식을 받기 전에 기록해야 할 양식을 모두 적어 병원에 제출해야 하는데, 그 안에는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또 주고 싶은 장기를 쓰고 그 곳에다 사인을 하는 난이 있다.
‘처음엔 내가 줄 형편이 어찌된담. 나는 지금 간을 기증 받아야 할 환자인데’하고 지나쳐 흘러버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토록 생명의 위기를 느낄 만큼 나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 있을까 생각하는 동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종합검사를 하면서 내 안에 괜찮은 장기들이 몇 가지 있는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나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혼수로 병원에 있을 때만해도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약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남의 간을 기증 받지 않으면 살수 없는 자임을 생각했을 때 얼마나 슬펐던지. 또 얼마나 불안했던지. 그러나 지금은 많이 회복이 되어 의사도 마음을 놓는다.
이제는 나에게도 줄 수 있는 장기들이 있음을 알게되자 어느새 나의 눈에선 새로운 감사의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기쁘고 희망찬 마음으로 남편과 자녀들과 함께 의논한 후 장기 이름을 쓰고 그곳에 사인을 했다.
그 후 나의 생각은 점차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생각이 바뀌어지니 나의 몸의 기능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무엇인가 풍성한 열매를 한 아름 안고 있는 기분이다. 병에서 놓임을 받는 것 같았다.
어느새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가 흘러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저하게 나의 건강을 보살펴 주고 애써주는 남편과 자녀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변함없이 염려하며 기도해 주고 있는 것도 감사하다. 특히 한 가족과도 같은 CMF선교원의 회원들 모두로부터 받고 있는 사랑은 나에게 힘찬 활력소를 준다. 돌이켜 볼수록 이 모든 사건과 환경 속에서 느끼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가 절로 나온다. 2004년 막이 내려가기 전에 맞이할 추수감사절에 사랑의 빚을 갚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황 순 원
(CMF선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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