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성전을 헐라!

2004-10-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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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롱아일랜드)

10월 31일은 개신교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지키는 ‘종교개혁일’이다.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한 사제였던 마틴 루터가 그 당시 종교의 부패성을 그냥 볼 수가 없어 어마어마한 권력의 아성인 교황청을 상대로 95개조의 항의문을 내걸고 혈혈단신으로 종교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때가 바로 중세 암흑시대였던 것이다.

종교의 부패성은 비단 그 때 뿐만이 아니었다. 예수 당시에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종교지도자들의 타락과 교회의 부패는 극에 달해있기 때문에 진노한 예수는 성전 안에 들어가 채찍을 휘둘러 일대 혁신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그 때 깜짝 놀란 제사장들이 예수에게 “대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성난 예수는 “이 성전을 헐라!”고 말하였다. 어느 시대건 종교가 종교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 존재가치가 없기 때문에 헐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예수 당시 거룩한 성전 안에서 환전상들이 돈을 바꾸느라고 소란을 떨었고, 한쪽에서는 양과 비둘기들을 끌어들여 매매하느라 야단법석이었던 것이다. 절기 때마다 예배자들이 제사에 필요한 제물(양이나 비룰기)들을 가지고 오며 성전에 들어올 때에는 성전세(반 세겔)를 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환전하는 일이나 짐승을 매매하는 일들은 마땅히 성전 바깥에서 하는 일인데 언제부터인가 이것들이 성전 안에까지 침범해 들어왔기 때문에 성전은 하루아침에 시장바닥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같은 일은 당시 제사장들이 “제사에는 무관심하고 젯밥에만 열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인 양은 반드시 성전 밖에서 죽여 피를 흘린 후 성전 안에 들어와 제단에 올려 불살라야 하는 것인데 산 채로 들어왔으니 이것은 제물이 아니라 상품인 것이다.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진정한 제물이 되려면 죽어서 교회 안에 들어와 예배를 드려야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못된 인간성이 그냥 살아있는 채로 들어왔다면 그것은 제물이 아니라 상품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거룩한 교회가 교회 본연의 사명을 망각한 채 온갖 잡된 일들을 자행하게 된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말은‘겉으로는 양의 머리를 내걸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교회가 겉으로는 사랑의 상징인 십자가를 내걸고는 안에서는 끼리끼리 작당을 하고, 상호간에 시기 질투를 일삼으며, 자기의 잇속을 차리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중직을 도맡아 권력행사를 일삼아 사람들을 차별하여 순진한 교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온갖 추태를 연출한다면 이는 ‘양두구육’인 것이다. 그런 교회라면 마땅히 헐어버려야 할 것이다.

할례받지 못한 사나운 인간성, 오만불손한 고약한 우월감, 남이 잘되면 배아파 하고, 남이 못되면 고소해하는 비뚤어진 심보들, 터무니 없는 말들을 만들어 유포함으로써 생사람을 잡아 즐기는 악취미들은 모두가 다 한묶음에 묶여져 십자가에 깡그리 못박아 죽고나야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되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을 제물이 아니라 교회를 소란케 하고 종당에는 주님의 채찍에 매맞아 쫓겨나게 될 속된 상품인 것이다. 그런 인간들이 우굴거리는 교회라면 일찌감치 헐어버려야 할 것이다.


언젠가 고국의 경주제일교회 대문에 서투른 글씨로 ‘이놈의 교회 뒈져라!’는 낙서가 씌여져 있었다고 한다. 글씨체로 보아 초등학교 2,3학년 정도의 아이가 쓴 것이라고 생각한 그 교회 담임목사는 그 낙서를 보고는 “어린 아이가 교회에 왔다가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그런 저주스런 낙서를 했을까!” 하는 연민과 아픈 마음으로 밤새 철야기도를 하고 나서 그 교회가 고쳐야 할 고질병 명세서를 작성해 사임서와 함께 당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고질병을 고치든지 아니면 목사의 사임서를 받든지 양단간에 선택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교회가 세상 정권과 야합하여 밤낮 길거리에 나서서 사회정의만 외쳐대고, 물질에 치우쳐 헌금 수입에만 관심을 가지며, 교회의 양적 부흥에만 치중하여 교인 쟁탈전을 일삼으며 신앙의 바탕은 없이 교회를 하나의 휴양처나 윤리 도덕을 강론하는 수도원 정도로 생각하는 교회관이나, 교회에 다니면 몸도 건강해지고 돈도 많이 벌어 출세하게 된다는 점쟁이식 교회관도, 조직력이나 재력을 앞세워 자파세력 구축을 일삼아 행세하려는 교권주의적 교회관도 모두 다 깡그리 헐어버려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일의 중요성은 혁신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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