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감 주사’ 대란

2004-10-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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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KCS 뉴욕한인봉사센터 공공보건부)

겨울이 오기도 전에 독감주사로 인해 난리법석이 났다.새벽부터 줄을 서는 모습은 양키스 경기를 보기 위해 밤을 새는 열성 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은색 머리를 한 노인들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몇 시간씩 줄을 서있는 것을 보면 여기가 뉴욕인가 의심이 갈 지경이다.

뉴저지에선 로토를 통해 백신을 제공한다고 하기도 하며 독감 백신값을 터무니 없이 올려받는 악덕 의료인도 등장하고 있다. 급기야 보름이 채 남지 않는 미 대선의 논쟁거리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흔히 플루(flu)라고 부르는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때문에 생기는 전염성 호흡기 감염이다. 이는 감염된 사람과 직접 접촉을 하거나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 독감은 열, 오한, 두통, 복통, 마른기침, 콧물, 전신 통증을 유발하는 전염성 높은 질병이다. 심지어 독감에 걸린 환자들은 폐렴, 탈수증, 지병의 악화 등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특히 고령자와 유아 독감 환자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왜 독감이 이렇게 문제가 되었는가? 미국내 독감 백신의 약 절반을 공급해 오던 영국의 카이론 제약회사의 독감 백신이 세균 감염을 이유로 생산이 금지되면서 미 전역에서 백신 품귀현상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다른 제약회사를 통해 약 3천만개 정도의 분량이 확보되었을 뿐이다. 백신의 추가 공급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독감예방 백신은 다른 예방접종과는 달리 해마다 성분이 다르고 수개월간의 배양기간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최소한 내년 2~3월까지는 속수무책인 셈이다.

토머스 프리덴 뉴욕시 보건 및 정신위생국장은 2~64세의 건강한 사람은 올해는 접종을 노약자에게 양보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관계자들은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환자의 접촉을 피하고 재채기와 기침에 노출되지 말며 손을 자주 씻고 감기 기운이 있으면 약을 복용하고 집에서 쉬라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KCS(뉴욕한인봉사센터) 공공보건부는 해마다 2~3천개의 백신을 확보하여 한인들에게 무료 독감 예방주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도 예외없이 삭감된 양의 백신을 제공했으며 아쉽게도 11월 행사는 모두 취소되었다.

필자는 올해 독감 백신 품귀로 인해 겪는 소동을 보며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첫째, 독감 백신이 여유있을 때에는 대대적인 광고와 홍보를 해도 별 반응이 없다가 품귀 소식이 전해지자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한인 커뮤니티에 국한된 상황은 아닐 것이지만 질병에 미리 관심을 갖고 대처하는 자세가 아쉽다.

둘째, 올해를 제외하면 독감 백신은 비교적 접종이 용이하고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대부분의 의료보험으로 커버가 되고 현금을 내더라도 부담이 적다. 하지만 실제로 더 위험한 질병에 대해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B형 간염을 예로 들면 이는 대부분의 의료보험으로 커버되지도 않으며 위험이나 가격 면에 있어 독감의 수십배에 이르는 질병이다.

KCS 공공보건부는 해마다 B형 간염 검사와 예방접종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봄부터 KCS에서 실시하고 있는 무료 간염검사와 예방접종 행사에 예상 밖으로 적은 인원이 참가하여 관계자들을 의아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미리 예약을 하고 당일날 길게 줄을 서는 것과 비교하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외에도 예방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올해의 독감 예방주사 대란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평소의 자신의 위생 습관을 되돌아 보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미리 대비하는 계기로 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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