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강산을 다녀와서

2004-10-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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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평통 차세대 분과위원장)

반세기에 걸친 군사적 대치의 현장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단의 북녘땅을 밟아본다는 것은 평통위원들에게 관광 이상의 뜻이 담겨 있었다. 10월 5일 화요일 저녁 금강산 일일관광에 참여하는 500여명의 평통위원들과 그 동반가족들을 나누어 실은 14대의 관광버스는 강원도 고성을 향해 동쪽으로 밤길을 달렸다.

고성지역은 휴전선에 의해 남북으로 잘려있는데 금강산은 북쪽 고성지역에 접해있어 남쪽 고성지역은 금강산 육로관광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서울에서 고성까지 3시간 남짓 걸렸는데 남쪽 고성에 있는 현대 아산이 경영하는 금강산 콘도에 투숙한 때는 자정이 지나서였다.


다음날, 10월 6일 수요일, 우리는 아침식사 후 남측 출입사무소로 향하였다. 남측 출입사무소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우리를 실은 14대의 버스는 세련되고 잘 훈련된 현대 아산 직원 안내양의 설명을 들으며 서서히 남측 휴전선을 통과하여 북측 휴전선을 향하여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북측 휴전선에 들어서기 바로 전 휴전선 중간지점에서 일단 정지하여 북한 군인의 검문을 받고 또다시 서서히 북측 휴전선을 통과하고 있었다. 반세기 동안 굳을대로 굳어진 군사적 대치의 현장을 목격하며, 그러나 좁은문처럼 삥긋이 열린 길을 통해 이동하는 우리가 탄 버스 안의 분위기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버스가 이동하는 길은 군사분계선을 지나는 동안 양 옆으로 초록색을 칠한 철조망과 철책으로 보호되어 있었고, 그 옆에 거의 완공된 동해북부선 철로가 평행선을 그으며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군데군데 길 둑 위에 빨간 깃발을 손에 든 북한군인이 부동자세로 서서 지나가는 우리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빨간 깃발은 환영의 표지가 아니고 감시의 표지’라는 안내양의 설명이었다.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에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절대로 버스 안에서 사진 찍는 흉내를 내지 말라는 경고도 있었다. 만일 사진을 찍다가 걸리면 빨간 깃발로 신호하여 어느새 사진 찍는 사람이 탄 버스를 정지시키고, 그 사람에게 벌금을 물린다는 얘기였다.

북측 출입사무소는 고성항에 지어진 해금강 특급호텔 앞에 마련되어 있었다. 북측 입국수속은 남측 출국수속에 비해 더 엄격하고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입국수속 후 금강산 초입에 있는 온정각 휴게소에 도착한 때는 남쪽 금강산 콘도를 떠난 지 4시간 정도 지난 후였다.

남북 화해와 신뢰 회복의 속도 만큼이나 느리고 오래 걸렸다. 인내가 필요했다. 50년이나 기다렸는데 5시간인들 기다리지 못하겠는가마는 수속을 더 간소화하는 데는 더 많은 신뢰가 쌓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코스는 구룡연, 만물상, 삼일포, 해금강 등 코스가 여러군데가 있는데 이곳들을 돌아보려는 최소한 2박3일은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복 3시간이 걸린다는 구룡연 코스는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을 기대했는데 남북의 화해와 신뢰회복을 재촉하는 듯한 따뜻한 기후 탓인지 나뭇잎들은 아직도 여름의 초록색 옷을 입고 있었다.

오고 가는 길에 뉴요커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군데군데에서 자대에 음료와 스낵을 올려놓고 파는 북한 아가씨들과 관광객들에게 지형지물과 그에 얽힌 사연을 설명해주는 북한 안내양들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 우리 해외동포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뜻이 통하는 같은 말을 쓰는 그들이 신기한 듯한 모양이었다. 50여년 동안이나 만날 수도 없는 그들이었으니까.

이어 온정각 휴게소 식당에서 허기를 채우고 기념품 판매장과 면세점을 돌아다보니 어느듯 출국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3시 반 버스에 다시 올라 북측 출입사무소, 군사분계선, 남측 출입사무소를 거꾸로 통과하여 다시 남쪽 고성의 금강산 콘도를 돌아올 때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금강산을 보았다고는 하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불과하였다. 관광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군사분계선 넘기 체험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단 50년만에 안전하게 군사분계선을 넘어 매우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북녘땅과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우리 민족의 비극인 분단, 그 분단의 극복을 숙제로 안고있는 우리에게 그것은 대
단한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지만, 남과 북은 돌이킬 수 없는 평화통일의 길목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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