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바른 인격보다 성적이 중요할까?

2004-10-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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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2부 차장대우)

지난 토요일 오후 퀸즈의 한 공립도서관을 찾았을 때였다. 한 무리의 한인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도서관으로 들어오더니 책을 읽고 있는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정신이 없었다. 보다못해 손가락을 입에 대며 `제발 조용히 하라’는 무언의 당부를 여러 차례 전달했지만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때 마침 도서관이 마련한 한국어 세미나가 진행 중이었으나 여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세미나의 질의응답조차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 정도였다.


다른 도서관 이용자들의 따가운 눈총이 감지되면서부터는 같은 한인으로서 도저히 민망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상대에 대한, 또 주변인에 대한 배려가 없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고 얼마 전 참석했던 교육세미나의 강사가 지적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뉴욕시 공립학교 교사인 그 강사는 “학교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다. 학생들의 도덕교육은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쳐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었다. 이어 한인 학부모 대다수가 자녀의 도덕교육을 학교와 교회에 떠맡긴 채 부모의 책임을 등한시하려는 경향이 많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바른 생활’ `도덕’ `윤리’ 등의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도덕교육을 착실히 실시해 온 한국과 달리 학교에서 별도의 도덕교육을 받지 않고 자란 미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투철한 이웃돕기 정신이나 봉사 정신을 자랑한다는 것.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이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또 남을 배려하는 기본 예절 또한 철두철미하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도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가운데 십중팔구 한인 중국인 등 아시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는 학생이나 어린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한인들은 으레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잣대로 자녀의 우수한 성적이나 명문대 입학을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한인 부모들은 자녀가 올바른 인격체를 갖춘 사람으로 성장했느냐 여부가 자녀의 성적 향상보다 때론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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