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대북 선제공격’ 현실성 있나

2004-10-14 (목)
크게 작게
이기영(주필)

9.11 테러 이후 부시대통령이 내세운 대 테러전의 특징은 선제공격론이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을 또 공격하기 전에 테러 위험요소를 먼저 제압한다는 주장이다. 선제공격이 현실로 나타난 사건이 이라크 침공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테러 위험인물이므로 사전에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이라크 다음으로 미국의 선제공격 대상에 오를 수 있는 나라에는 북한도 포함돼 있다.


핵무기를 개발하여 테러리스트에게 넘길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선과정에서 부시대통령은 물론 케리 후보도 북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선제공격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위험성이 정말로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선제공격이 한 마디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선제공격이란 전쟁이나 전투에서 임박한 적의 공격에 분쇄하기 위해 먼저 선수를 치는 공격이다. 전쟁을 하는 쌍방은 적군이 공격해 올 것을 미리 안다면 당연히 선제공격으로 방어하는 것이 최상의 대책이다. 역사상의 많은 전쟁과 전투에서는 선제공격을 제대로 할 경우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다. 미국이 아랍 테러리스트들의 음모를 사전에 적발하여 선제공격을 했더라면 9.11 테러와 같은 끔찍한 참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선제공격은 악용된 예도 있다. 선제공격의 명수인 독일과 일본이 그 예이다.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해체시키고 폴란드를 침공하고 프랑스를 공격한 것은 공격의 위험성이 없는 나라를 침략한 행위였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고 에너지 확보를 목적으로 동남아를 점령한 것도 이와 마찬가지 행위였다.

미국은 과거에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고 항상 전쟁의 와중에 말려들었다. 세계 1차대전에는 독일에 의해 미국 선박이 격침된 후 참전했고, 2차대전 참전도 독일에 의한 미국선박 격침과 일본의 진주만 기습사건으로 이루
어졌다. 한국전쟁과 월남전에도 미국은 전쟁 도중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9.11 테러의 충격은 이러한 미국의 태도를 정반대로 바꾸어 놓았다. 미국이 과거에 다른 나라의 전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고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던 것은 과거의 모든 전쟁이 미국에게는 ‘강 건너의 불’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직접 폭탄이 떨어지고 미국 안에서 인명이 살상되는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테러전은 그렇지 않다.

미국과 미국인이 언제 공격을 당해 희생자가 발생할 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그런 공격을 당하기 전에 미리 차단하는 선제공격이 필수불가결하게 되었다. 그 선제공격의대상이 될 수 있는 나라에 북한이 포함되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 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북핵문제는 미국이 사활을 걸고 덤벼들어야 하는 문제가 결코 아닌 것이다. 북한이 만약 핵무기를 만들 경우, 어떤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 당장 한국의 안보가 가장 위협받게 될 것이다. 또 북핵의 위협 아래 놓인 일본이 핵무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의 다른 핵강국인 중국 및 러시아와 세력균형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몇 개를 만들었다고 해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북한이 결코 미국의 상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북핵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은 북핵문제를 빌미로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지속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6자회담에 맡기면서 양자회담은 극력 반대하고 있다. 6자회담의 가장 중요한 일원으로서 북핵협상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으면서도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6자회담의 다른 나라들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미국이 대북 선제공격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북핵사태가 미국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갈 때를 대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외교적 노력이나 위협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어 테러집단에 유출할 단계에 이른다면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북한을 선제공격하게 될 것이다. 또 남한이 반미 친북의 노선 변화를 분명히 하여 동북아의 세력 균형이 파괴될 때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단행할 수 있다.

북한이 미국의 공격을 받으면 남한에 반격을 가하게 됨으로써 미국의 선제공격은 남북한에 모두 영향을 주게 된다. 남한이 미국과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한 대북 선제공격은 쉽게 단행될 수 없다. 그러나 남한이 미국에 등을 돌린다면 미국은 부담 없이 선제공격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선제공격은 남북한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여 테러집단에 넘길 우려가 확실시 될 경우, 또는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상으로 한국이 반미화 될 경우 미국은 선제공격이란 수단을 북핵사태에 적용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론은 결국 북한과 한국의 태도에 따라 현실화 되거나 되지 않을 수도 있는 비장의 카드라고 할 수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