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프지 말아야

2004-10-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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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종교전문기자)

이불 둘을 덮었는데도 사시나무 떨듯 떨린다. 떨리면서도 속내의가 다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골이 쪼개지는 것 같고 몽둥이로 온 몸을 두드려 맞는 것 같다. 평소에는 침 한 번 제대로 삼키지 않은 것 같았는데 10초에 한번씩 침을 삼킨다. 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타는 듯 아픔이 계속된다.

고통의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만. 어떠할까 생각할 1초의 여유도 없다. 이러기를 온 밤 내내. 새벽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월요일. 사무실에 나가야 한다. 생식을 물에 풀어 목구멍으로 넘길 때 목구멍에서는 불이 난다. 한 모금 한 모금 넘어갈 때마다 지옥 불 속에 들어가는 것 같다.


일어서니 어질어질 앞이 안 보인다. 현기증. 이런 현기증은 처음이다. “아, 이런 식으로 사람은 가나보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월요일의 일은 가장 많다. 누가 대신해 줄까. 차라리 죽어도 직장에 가서 죽는 것이 낫다. 한 걸음, 두 걸음 비틀거린다. 도저히 더 갈 수가 없다. 그래도 가야 한다. 식은땀이 온 얼굴을 적신다.

하루쯤 쉰다고 누어 무어라 하겠느냐만. 사람이 살고 봐야지, 일이 대수가 될 수 있겠느냐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만 한다. 다행히 자동차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비틀대며 탄다. 운전대를 잡는다. 시동을 건다. 차는 나간다. 속옷이 젖는다. 식은땀은 계속 흐르고. 직장이다. 조금은 일찍 왔나보다. 출근부에 사인하고 이층으로 올라가 책상 앞에 앉았다. 한 30분은 그대로 엎드려졌나보다.

일찍 출근하면 뭐해. 이러고 있다니. 도저히 컴퓨터를 킬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한 후배가 다가와 얼굴을 본다. “이런 얼굴 처음”이라며 놀라워한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 누가 대신 해줄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이 살을 뜯어내듯 통증을 가한다.

엎드렸다 다시 일어나고, 일어났다 다시 엎드리고. 속옷이 푹 젖었다. 할 일을 끝낸다. 오후다. 죽지는 않았다. 빙글빙글 돈다. 이렇게 도는 건 처음이다.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 하더니. 이렇게 돌다가 가는 수도 있나보다. 통증은 계속되고, 살아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많다. 병원에 입원하면 살까.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누가하나. 할 사람은 많겠지.

병원에 가느니 차라리 약국을 택하자. 이 정도 아픔으로 약해질 수야 없지. 약을 처방 받아 집으로 간다. 온 몸이 떨린다. 골은 때리고. 밤새 떤다. 짐승 같은 신음의 소리가 다른 식구들을 힘들게 한다. 차라리 병원에 입원이라도 할 걸. 늦었다. 춥다. 또 이불 두벌. 진통제가 소용없다. 사람이 이렇게 허약할 줄이야. 깊은 깨달음이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 건강이 제일이야! 뭐니 뭐니해도 건강이 제일이야! 사람이 사는 한, 아니 사람의 목숨이 붙어있는 한 건강이 제일이야. 아프면, 모든 게 다 짜증이야. 가진 게 별로 없어도. 배운 게 별로 없어도. 명예가 별로 없어도. 건강한 것이 제일이야. 가진 게 많으면 뭐해. 아프면 다 소용없어.”

“암에 걸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아플까! 중병에 걸려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 또한 얼마나 아플까! 이런 저런 이유로 몸에 질병이 있어 고통 속에서 진통제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아플까! 태어날 때 잘못돼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유아들 또한 얼마나 아플까!” “인간의 약함. 너무나 약하다.

고통이 계속되면 이렇게 망가질 것을. 고문이라는 것이 이래서 개발되었나. 고문을 가해 고통을 주고, 허위자백을 받아내는 것쯤 간단한 문제다. 사람 몸이라는 것, 철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조금만 고통이 가해져도 금방 신음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허약한 인간들이 가진 몸이여.”아픈지 나흘이 지났다. 항생제가 들었다. 부었던 편도선이 가라앉았다. 식은땀이 멎었다. 손마디마다 저리든 아픔이 가셨다.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아픔 없이 잘 넘어간다. 감사하다. 행복하다. 그런데, 이런 고통을 안고 오랫동안 살아야 하는 환자들은 얼마나 아플까.

문제는 지금부터다.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 아픔이 가신 하나만이라도 남은 평생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고통과 아픔 없이 살아가는 것 하나만이라도 감사의 충분 조건이 됨을 아파 본 사람들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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