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제559주년 한글날을 앞두고

2004-10-08 (금)
크게 작게
장래준(취재1부 차장)

“자라나는 한인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한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뜻깊은 장학행사가 반드시 영어 일색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명칭도 ‘코리안’이 들어간 장학사업이었고 상을 주는 사람도, 받는 학생도, 그리고 참석자들 대부분도 한인이었는데 말입니다.”최근 뉴욕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장학행사를 다녀온 한 한인의 푸념은 계속됐다. “사회자의 진행은 물론 축사, 인사말, 게다가 주요 참석 인사 소개 때도 직책을 모두 영어로 소개하더군요. 그나마 행사장의 태극기와 뉴욕한인회, 총영사관 관계자의 한국어 축사마저 없었다면 정말로 한인 행사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고 한다.


오는 9일은 제559주년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1446년)를 기념하고 한글의 연구, 보급을 장려하기 위해 1926년 일제치하에서 당시 민족주의 국어학자들의 단체인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가 주동이 되어 ‘가갸날’이란 이름으로 정한 것이 유래다.

1928년부터 ‘한글날’로 명칭을 바꾸고 계속 음력으로 기념하다 한글창제 500주년인 1946년부터 양력인 현재의 10월9일로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 한민족의 말과 글인 한글은 참으로 많은 수난을 겪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문에 치이고 일제시대에는 아예 말살정책까지 당했다가 이제 서구물질문명 속에서 영어에 계속 밀리고 있다.

미국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영어를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이민 1세들이 영어를 못해 당한 설움은 과거부터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영어를 사용한 완벽한 의사소통은 타언어권 이민자의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숙제이기 전에 한가지 분명한 진리는 언어와 글을 잃어버린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한인을 만났을 때 우리는 무엇인가 느끼고 있다. 미국에 사는 한인으로서 첫 번째 자긍심은 한국말을 하면서 영어도 하는, 반대로 영어를 쓰면서 한국말도 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상을 받으러온 한인 청소년들 대부분이 한국 이름을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던데 어른들은 원고를 읽으면서까지 서툰 영어로 행사를 꼭 진행해야 했는지…. 한국서 자랄 때 한글날 국경일을 좋아했던 기억이 부끄럽더군요.”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