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노인들이 비하의 대상인가

2004-10-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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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사람이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면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는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젊었을 때 사려가 깊고 언행이 반듯했던 사람도 노인이 되면 어린 아이처럼 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조그만 일에도 쉽게 노하거나 감정을 상하기도 하고 남에게 말을 할 때 두서없이 한 말을 또 하고 잔소리를 섞어 듣는 이들을 짜증나게도 한다. 그렇지만 노인
들이 스스로 이런 약점을 알아서 고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 점도 또한 어린아이와 같은 것 같다.

노인들을 상대로 일을 하는 젊은이들이 노인들에 대해 털어놓는 불만은 노인들의 사고방식과 일상활동이 젊은이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할 때 내용을 조리있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말을 또 하고 쓸데없는 걱정과 잔소리를 섞는다고 질색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전화를 걸어 용건을 간단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끌거나 반말이나 희롱하는 말을 할 때 싫어한다. 그리고 과거의 사고방식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게 고집할 때 더욱 싫어한다. 노인들이 사회생활에서 배척당하고 가정에서 고부간, 또는 부모 자식간 기피현상이 생기는 것은 이런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는 수가 많다.

노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도 어린아이와 같은 공통점이다. 노인이 되면 대부분 사람들이 평생동안 하던 일에서 은퇴를 하게 되므로 사회적 기반이나 경제력을 잃어 무력해진다. 또 기억력과 체력이 떨어지고 건강을 잃게되는 수도 많다. 심신이 쇠퇴하면서 자존심이 손상되고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리하여 노인은 가정에서 부양의 대상이 되고 사회에서도 공
공부조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노인들은 어린아이와 다른 점이 있다. 노인들은 어린아이 뿐만 아니라 장성한 사람들이 갖지 못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평생을 통해 살아온 경험에서 체득된 지혜가 바로 그것이다. 노인들에게는 지난 날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있다. 20대와 30대의 혈기왕성한 시절에 겪었던 일을 회상할 때 지금이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텐데 하는 후회도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자기 인생의 단계적 발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고, 30세에 뜻을 세우고, 40세에 미혹하지 아니하고, 50세에 천명(운명)을 알고, 60세에 무슨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리지 않고, 70세에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제대로 늙어서 나이값을 제대로 하면 이런 경지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린아이처럼 나이값을 못하는 노인이나 공자처럼 제대로 늙은 노인이나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있다. 지금 사회를 이끌어 가면서 힘을 자랑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모두 지금 노인이 된 사람들이 낳아서 길러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또 지금의 노인들도 한 때는 그런 젊은이들이었고 지금의 젊은이들도 곧 노인이 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의 부모가 아니더라도 노인들에 대해서는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경로사상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요즘 실력주의 세상이 되면서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이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
다. 경제적, 신체적 약자인 노인들이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공경을 받기 보다는 괄시를 받는 신세로 전락해 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회 지도층의 노인 비하 발언이 서슴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봄 한국의 총선 직전에 여당의 대표가 “60세 이상 노인은 투표장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쉬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지난달에는 뉴욕을 방문한 여당 원내 대표가 “교포 노인들이 연세가 들어서 곧 돌아가실거다. 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느냐”고 했다고 한다.


이들의 발언은 자신들과 다른 정치적 노선을 가진 노인층을 폄하하기 위한 발언인데 정치적 차이점이라면 정치적 논쟁으로 결판을 낼 일이지 노인이라는 약점을 비하한 것은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 이것은 논쟁을 하는 상대자와 논쟁의 핵심에 대해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못생겼다거나 돈도 없는 주제에 자기 주장이나 한다 하는 등 남의 엉뚱한 약점을
비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더우기 이들도 머지않아 노인이 될 사람들이고 또 사람이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장담할 수 없는 인생사를 최고집권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말한다는 것은 오늘날 인성교육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굳이 경로사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생의 선배이면서도 사회의 약자인 노인들은 공경의 대상이지 결코 비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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