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이영희 박물관

2004-10-01 (금)
크게 작게
김진혜(취재2부 부장대우)

뉴욕을 비롯 미주 전역에 성공한 한인 사업가들은 많다. 맨주먹으로 기업 신화를 이룩한 재미 사업가들에 대해 종종 들어보았다.아메리칸 드림을 이룩한 한인들 중 좋은 일에 돈을 쓰는 사람들을 볼 때 그 성공은 더 없이
값지게 보인다.

대표적으로 한국관이 있는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미술관의 후원자인 이종문씨를 예로 들 수 있다. 새로 이전한 이 미술관을 지원, 건물에 ‘이종문 센터’란 이름이 새겨진 이씨가 자라나는 한인 2세, 3세들에게 얼마나 귀중한 자산을 남겨 놓았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뉴욕에서 돈 번 한인들이라면 한번쯤 ‘문화사업’을 생각해볼 것이다. 고상하고 근사해 보이지만 문화사업만큼 ‘빈 독에 물 붓기’처럼 돈 없애면서 표도 안 나는 사업은 없을 것이다.

후세에게 뭔가 꼭 남겨야겠다는 사명감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특히 박물관 건립은 더더욱 그렇다. 섣부른 허영심이나 이름낼 생각으로 시작했다가는 실망만 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세계 문화의 도시인 뉴욕에서 한국 전통 문화를 보여줄 제대로 된 박물관 하나 없는 상황에서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큰 일(?)을 저질렀다. 통 큰 여자 이영희씨는 지난 24일 5애비뉴와 만나는 맨하탄 32가에 이영희 박물관을 개관한 것.

궁중의상과 일반 여인네들의 한복, 노리개, 비녀를 비롯한 장신구 등 조선시대 유물 1,000점을 주제별로 돌아가며 전시할 이영희 박물관은 개관과 더불어 뉴욕 한인사회 뿐 아니라 미주류사회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2년전 맨하탄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을 때 주위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의심하거나 설사 설립하더라도 운영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우려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박물관을 열기 위해 싯가 수 십억원에 달하는 자신의 소장품을 선뜻 내놓았고 건물 한 채 값의 사재를 털었다. 지금은 임대 건물이지만 앞으로 자체 건물을 마련, 천 억원 가치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키워낼 포부를 갖고 열심히 한복을 팔겠다는 의지를 밝혔
다.

이영희 박물관은 자신의 이름만 걸었을 뿐 개인 것이 아닌 동포들의 재산이라고 분명히 밝힌 그는 ‘세계 문화의 도시인 뉴욕 맨하탄에 우리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박물관 운영을 위해 한인들의 관심과 성원을 간절히 요망했다. 맨하탄 32가에서 밥만 먹지 말고 박물관에 가 우리 것을 둘러보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