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비자카드와 결혼

2004-09-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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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취재부 차장)

최근 주말판 한국 주간지 커버에 실린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카드 빚 갚아주면 시집갈게’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 따르면 요즘 한국에서 주체할 수 없는 크레딧 카드 빚으로 시달리는 전문직 미혼 여성들이 오로지 경제적 요소만을 추구하며 신랑감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들 여성은 남자와의 나이차이가 ‘원조교제’ 수준이더라도 일단 경제적인 능력만 있으면 사랑 없는 백년가약을 맺고 있다. 우리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기자는 아직 미혼이지만 결혼이란 사랑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된다는 것만큼은 당연한 사실이라 믿는다. 주위에 결혼한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부부싸움의 90%는 돈 때문에 발생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을 만큼 경제적 요소가 부부관계나 가족에게 있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결혼의 기본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30대 후반 미혼 남성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동남아의 현지 여성과 결혼해 신분 문제를 해결한 뒤 퇴직금으로 노래방 등의 비즈니스를 개업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는 기사도 접한 바 있다. 물론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우리 역시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언어 다르고 문화 다른 이 나라로 왔으니까. 그러나 요즘 대한민국에서 결혼과 관련된 1순위 단어는 ‘경제력’이 돼 버린 것 같다.

최근 한 초등학교 동창이 인터넷 동창회 웹사이트에 ‘성철 스님 주례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주례사에는 이와 같은 대목이 있다.

“남녀가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보는데 그 따져보는 그 근본 심보는 덕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지위는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져 가지고 이리저리 고르는 이유는 덕 좀 볼까 하는 마음입니다. 손해볼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덕보려는 마음이 없
으면 어떨까? 좀 적으면 어떨까요?”

사랑 없는 결혼...상대방으로부터 덕 좀 봐서 팔자 고쳐보려는 결혼... 한국의 이혼율이 요즘의 석유 값처럼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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