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희망의 보름달

2004-09-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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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보도에 의하면 지금 한국은 7,000만이 넘는 민족이 고향의 부모를 찾아 대이동을 하고 있다. 고유의 민속명절인 한가위, 추석을 기리기 위함이다. 맑고 청명한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풍성하고 풍요로운 가을철, 벌판에 오곡백화가 무르익고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수확의 계절에 맞이하는 한가위, 이 명절은 이국 땅에 와 있는 우리들에게도 고향의 향수를 추억케 하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우리는 한국에서처럼 이동은 못하지만 머나먼 남의 나라에서 떠오른 둥근 달을 바라보며 고향의 정취를 맛보면서 지내야 될 것 같다. 한국에서 보내던 그 때 그 시절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풍성해 마음까지 넉넉해지게 하는 고유의 명절 한가위, 그래선지 높은 가을 하늘에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이 유난히도 밝고 투명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이민 와서 맞는 우리의 추석은 그 옛날 기대에 부풀던 그 명절과는 완연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생활은 더 여유로와 졌는데 마음은 예전보다 훨씬 더 각박해진 경우가 적지 않다.

먹고살기가 어려워선지 우리의 얼굴에선 우선 미소가 사라졌다. 가족끼리도 한자리에 만나 마음놓고 서로 대화하며 기쁨을 맛보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힘들게 만나게 되더라도 그저 필요한 말만 하고 서로가 피곤하고 힘들어서 말을 잘 않으려고 든다.

게다가 음식마저도 모두 가공 식품과 인스턴트 식품으로 넘쳐나 있기 때문에 한가위가 왔다해도 기분이 예전과 같지 않다. 한국에서도 아무리 가족이 모인다 야단들을 떨어도 이제는 생활의 간소화로 차례상도 테이크 아웃 시대가 도래, 음식은 물론, 향과 양초까지 주문하면 모두 다 집에까지
배달해 준다고 한다.

가족이 둘러앉아 밤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며 손으로 직접 빚던 송편의 맛은 이제 옛말이 돼 버렸다. 새 옷을 입고 햇곡식, 햇과일을 먹으며 조상의 묘를 찾아 성묘하고 온 가족이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즐기던 한가위, 그 명절이 이제는 머나먼 전설같이 점점 우리 이민자들의 생활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당장 우리 앞에는 계속 오르는 렌트비와 자동차 모기지, 각종 보험료, 물어야 할 개스비, 먹고살아야 할 식료품 값을 해결해야 할 버거운 짐이 놓여 있다.

어떻게든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아야 되기 때문에 명절이란 사실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솔직히 길목의 한들한들 코스모스가 피었는지 죽었는지 잘 모르는 한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현실에 대한 부담이 크고 그러다 보니 정서나 인정이 점점 메말라 가고 있다.

추석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동양에서 제일 큰 명절이다. 한국은 아직도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인구의 절반이 대이동을 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정감만은 풍요롭다.

힘들게 찾아간 고향에서 조상께 제사하고 친척들과 만나 즐거움을 나누곤 한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이동의 자유가 없고 돈도 없고 기본적인 생활의 풍요를 못 누린다. 음식도 김정일 생일 때나 쌀밥을 먹는 것을 제외하곤 너무 없어 사는 것이 말이 아니다. 그에 비하면 남한이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의 생활은 아직도 지상천국이 아니고 무엇인가. 교회 부흥하는 것과 식당에서 버려지는 음식물만 보아도 너무나 풍족하다.


한국에는 역대정권의 그 많은 지도자가 부패 하나 척결 못하는데 한 명의 여 경감이 혼자서 전국의 사창가를 정화시키는데 앞장서 좋은 결실을 맺고 있다. 좋은 뜻을 품은 한 사람의 역할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커다란 열매를 거두어드리고 있다.

겸손은 좋은 것이나 무조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자신을 비하하면 부정적이 된다. 가진 것이 없더라도 ‘나는 할 수 있다’ 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서로 마음을 나누고 뜻을 나누면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다. 고로 ‘죽겠다’ ‘죽겠다’ 하지 말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방향으로 시야를 넓게 가지고 항시 좋은 쪽으로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꿈과 희망을 심어야 한다.

우리가 1년에 12번 보는 보름달 중 유독 한가위 때 뜨는 달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추석에 뜨는 달이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추석의 보름달은 수고와 땀이 담겨있는 수확의 계절에 뜨는 달이기에 향기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지금 비록 여러 가지로 어렵지만 생각만은 뿌듯하고 희망차고 밝아야 하지 않을까. 비록 없더라도 마음만은 보름달 같이 맑고 투명하고 풍성하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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