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푸른하늘 은하수

2004-09-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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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관)

지난 여름 서울에서 방문온 친구가 어느 날 저녁 뒤뜰에 앉아있다가 불쑥 “너네 집 하늘에는 별이 훨씬 많구나!” 하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 소리를 듣고 하늘을 쳐다보니 정말 이날 따라 청명한 맑은 하늘에 별도 많고 달도 밝았다.

뉴욕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이사온 지 거의 20년이 가깝지만 시골에서 쳐다보는 하늘이 과연 더 맑고 청명해서 훨씬 많은 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최근 한국의 어느 TV에서 ‘빛(光)의 공해’란 제목의 특집을 본 일이 있다. 이제 대도시 지역에는 상가들이 거의 24시간 열려있기 일쑤고 고층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고광도 전광판 광고 등이 도심지역을 거의 대낮같이 밝히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은 이런 조명에 가려 하늘의 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공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어린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은하수를 보지 못했다는 어린이가 대부분이었다는 놀라운 통계가 나왔다.

요사이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대도시 지역에서 이런 밤낮의 구별 없는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정말 우리가 자랄 때처럼 하늘을 쳐다보고 은하수나 북두칠성을 헤아리고 오리온 별자리를 찾는 따위의 별을 이야기하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푸른 하늘 은하수/하얀 쪽배엔/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등의 하늘을 쳐다보며 많은 노래를 불렀다. 이러면서 아름다운 동심을 길렀고 순진 무구한 어린이들은 밝은 달을 쳐다보며 정말로 방아 찧는 토끼를 찾을 거라고 시간을 보낸 어린이들이 있었다.

빛의 공해에 관한 특집을 본 이후로 나는 빛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많은 것을 관찰하게 되었고, 과연 우리 주위에는 너무 많은 빛의 공해를 방치해 놓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장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겪게 되는 빛의 공해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에서 경험하게 된다.

밤에 하이웨이를 운전하다 보면 하이 빔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는 차들을 보게 된다. 하이 빔 라이트를 켜고 있는 자신이야 앞이 잘 보여 도움이 될 지는 몰라도 이를 마주하는 운전자는 순간 장님이 되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얌체짓이다.

또한 법의 위반이다. 일일이 예를 들자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우리 주위에는 무심코 지나온 많은 빛의 공해가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다시 생긱해 보아야 할 것은 별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이 정신적인 가치관이나 정서의 형성에 많은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슴 섬뜩하고 걱정되는 것은 은하수를 보지 못했다는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하고 어린이 수준의 사고 속에서 자라야 된다.


지금 세상에 달 속의 계수나무를 찾는 어린이가 없다는 것은 그들이 옛날의 어린이 보다 더 똑똑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어린이들이 갖는 꿈의 세계를 더 빨리 잃어버린 현상일 뿐이다. 똑똑해졌다고 자랑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다운 정서를 잊어버린 것을 슬퍼해야 할 일이다.
금년 여름에는 유난히 많은 허리케인이 연속으로 미 대륙을 지나갔다. 이 때문에 대기중의 먼지들이 쓸려갔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 해의 가을 하늘은 전에 없이 훨씬 맑아진 것은 틀림없다.

이번 추석날에는 ‘얼마나 밝은 달을 보게 될는지’ 가슴이 설레도록 기다려진다.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의 흉내가 아니더라도 술 한 잔 걸치고 계수나무며 방아 찧는 토끼를 찾아보는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것도 하나의 멋진 풍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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