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86세대의 사람들

2004-0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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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1907년 낙후한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패한 짜르 정부가 개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개혁의 추진은 집권자의 통치가 잘못되어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 된다.

개혁이 요구되는 정치상황에서 전 세대의 혁명 선배들을 안이한 자유주의자로 매도해 ‘옛 세대’라 비판하며 좀 더 과격한 사고와 행동에 의한 짜르 타도 혁명 이론을 정립해 스스로를 ‘1860년대 사람들’이라 부르는 반체제 청년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체르니쉐프스키인데 교사 출신의 지식인이다. 그는 이미 대학생 시절부터 황제에 대한 증오심과 미온적인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혐오감에 젖어 현존의 정치제도를 파괴한 후 사회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질서 건립을 위해 인민에 파고들어 계몽에 열을 올렸다.

이들 과격집단은 후에 더 과격한 레닌에 의한 공산혁명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닦아놓아 러시아 발전의 역사 수레바퀴를 80년 동안 헛돌게 만들었다.

개혁이 요구됐던 남한의 부패한 군사정권이 키운 과격사고 행동집단인 386세대의 사람들은 이론과 투쟁방법에서 러시아의 혁명투사인 ‘1860년대 사람들’을 꼭 빼어 닮은 한국판 전위대들이다.

해방 후 분단된 한반도에서는 반세기 이상 떨어져 살면서 재통일을 위해 많은 열정을 쏟아 부었는데 결과는 그들이 원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넓힌 조그마한 영토도 없는 백전백승의 용장이요, 민족의 태양을 북쪽에서 얻어졌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군사정부와 죽기로 싸웠던 남쪽에서는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경찰에 화염병을 투척하는 과격한 행동의 ‘386세대’를 탄생시켜 일부를 국회로 들여보냈다.

철천지 원수인 미국과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다는 지상 최고의 반미 북녘 정치세력에 힘이 더 실리게 되어 반미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정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듯 하다.

무법적 과격행동 경험 이외에 정치능력을 쌓을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386세대’가 집권당 행동대원이 되어서 교조를 부추기어 학교장을 성토하고 사병을 부추키어 장교들을 혼내준다면 민주적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좋은 교육이 될 수 없으며 강한 전투능력을 갖춘 군대가 될 수 없다.


반체제 개혁운동의 새 세대로 자처하는 집단의 이상이 창안해낸 ‘모두에게 열린 참여정치’는 오히려 정부의 취약성을 낳아 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역기능이 될 수 있고 반미운동은 세계로 향한 경제 발전에 장해가 될 뿐이다.

‘386세대’의 스승인 체르니쉐프스키가 추종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고 방침을 제시했듯이 서구의 정부 개념에서 벗어난 비합리적 북녘정치 세력에 대해 그들이 물어야 할 질문들이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침묵하는 원인, 북녘 동포의 인권문제, 기아 해결에 관한 정책, 받아들일 수 있는 통일정책 등이다.

어두웠던 군사통치시절 ‘386세대’의 과격한 투쟁 경력과 음모의 체험을 비민주적 세습의 북녘 세력을 견제하고저 할 때 꼭 필요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사명감을 갖고 실천할 의지가 없고서는 민주사회를 성취한 남쪽에서 한물 간 그들이 할 일이란 남지 않게 되고 설 땅 조차 없어질 것이다. 그들의 반미 행위로 우리 미주동포들이 불편을 느끼고 불쾌감 마저 갖는 것에 대해서도 과연 그들은 모른다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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