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한 때다

2004-0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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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정순(원로성직자회 부회장)

고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곁에서 보기는 1964년 대통령선거 유세 때이다.
서울고등학교 운동장에는 입추에 여지없이 근 15만여명의 청중들로 꽉 차여 벽돌담 위에까지 군중이 올라가 참관하고 있었다.

주석단에는 전 유엔대사 임병직, 공화당의장 박준규, 대통령후보 박정희, 전 내무장관 윤치영, 필자, 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 권영대 교수 합 6명이 참석하였다.


권교수와 필자는 선관위원으로 필자는 경종을, 권교수는 필기를 받아 쓰기로 하고 박 후보의 연설이 선거법에 위반할 때는 권 교수는 그 연설내용을 필기하고 필자는 즉시 발언을 정지시키는 직무를 맡았었다.

주석단 배후에는 5.16 주체세력으로 보이는 계급장을 달지 않은 잠바 바람의 군인들이 쫙 둘러섰고 주석단 전면에도 주체세력으로 보이는 계급장 없는 잠바 바람의 군인들이 100여명 버티고 앉았다.

정견발표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너무나 흥분하고 긴장된 탓인지 박 후보는 연설을 하려하지 않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그리하여 임병직 전 대사가 찬조연설을 시작하였고, 그 다음은 박준규 공화당 의장이 계속했다. 그 다음에도 박 후보가 연설을 사양하자 윤치영 전 내무장관이 찬조연설을 하였으나 맨 나중에도 박 후보는 사양하였다.

앞에 앉은 주체세력들이 돌연 일제히 일어나 혈서로 쓴 “박정희 의장 만세”라는 프랭카드를 쳐들면서 만세삼창을 외치자 그때서야 일어서서 차분하게 정견발표를 시작하였다.

이 순간에 부산 대신동 운동장에서는 윤보선 후보가… 여수 순천의 반란사건 주모자 박 후보를 성토하는 연설을 하고 있었다. 연일 신문지상에 대서특필하던 때인데도 박 후보는 윤 후보를 비난하는 발언은 일체 하지 않고 부강한 나라와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당선되면 헌신하겠다는 요지의 간명한 연설로 마쳤다.

그 연설 내용을 듣고 필자는 그 분에 대한 인상이 달라짐을 감지하였다. 그는 군사혁명을 통하여 정권을 탈취한 자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죄자로 인식하였었다. 그러기에 군사정권에 친근하는 유진산 의원이나 나용균 국회 부의장 같은 야당 중진의원들을 필자는 징계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 이리하여 군사정권을 반대하고 1965년 조국을 떠났던 것이다.

그가 서거한 후 전두환대통령 시절 국군의 날 행사에 참관하기 위해 조국을 방문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팔도강산을 돌아보고 고속도로의 개통과 조국근대화 발전사항을 보고 그가 독재자로 비난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의 장점으로 조국 근대화와 보릿고개 시절을 없애고 부강한 국가로 발전시킨 공적은 역대 어느 대통령 보다도 월등하고 훌륭한 지도자였음을 깨달았
다. 그를 이 때까지 반대해 오던 필자는 한강다리를 건너 국군묘지를 찾아가 그 묘소에 묵념을 드렸다.


물론 필자는 소속 정당이던 민정당 대표 최고위원이었던 해위선생 묘소에도 참배하였으나 박 대통령 묘소를 찾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목격하였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국가보안법 폐지의 불가와 헌법재판소의 국보법 폐지의 위헌을 선언하고 이 시점에도 정계와 군의 원로들이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데도 산적한 국정 현안들을 외면하고 국보법 폐지 주장, 친일 과거사 규명등을 들추어 국론 분열을 일으키고 미국 우방의 유대 강화를 외면하고 과거의 적성국가인 러시아와 중국, 북
한에 친근하려는 배은망덕한 노무현 대통령의 한심스러운 작태는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점에 박 대통령 같은 강력하고 지도력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정책 방향으로 국론을 통일하여 앞장 서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라도 노무현 대통령은 국내 다수의 의견과 특히 정치와 군의 원로들 및 한나라당의 국보법 폐지 결사 투쟁으로 여야의 격돌을 사전에 미연 방지하여 국민의 안정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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